인도에서 코로나19 누적 감염자가 2000만명을 넘긴 가운데 4일 뉴델리의 한 화장터에 사망자의 주검을 태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황필규|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점점 더 많은 여러 나라 인권변호사들과 온라인으로 정보를 교류하고 함께 일한다. 인도 상황이 많이 안 좋았을 때 몇몇 변호사들과 온라인 회의를 했다. 실제로는 인도 변호사를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함이었는데 같은 사무실 동료가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회의에서는 브라질 연구자들이 공평한 백신 공급을 위한 국제적인 법적 대응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절망적인 절박함이 느껴지면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최근 통계를 보면 인도와 브라질은 코로나19로 인한 누적 사망자가 40만~50만에 이르고, 하루 1500~2000명이 생을 마감한다. 한국에서 봤을 때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통계다. 숫자가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 개인으로 접근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을 포함한 몇몇 소위 선진국에서 상당수 국민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지만,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현재까지 전체 백신 생산량의 1% 미만만이 저소득 국가들에게 돌아갔을 뿐이다.
한국에서 평등한 백신접근권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론화되지 못했다. 시민건강연구소 등 여러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트립스) 특허 등 특정 조항의 일시적 유예,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무료로 접근 가능한 백신’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지난 5월12일 여야 의원 135명이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한시적 면제 지지 및 전세계적 백신 공동개발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발의 후 두달이 넘었지만 시간을 다투는 이 결의안이 채택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2020년 11월 21일 촬영한 브라질 마나우스의 코로나19 사망자 묘역. 마나우스 AFP/연합뉴스
전세계적인 백신의 불균등한 배분은 결과적으로 국가 간, 국민 간 계급과 위계를 형성하고 사실상 생명의 등급을 제시한다. 위기의 장기화, 사망자 급증, 경기침체 심화, 사회적 불안정의 확산이 곧바로 이어지고 지속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저소득 국가들에만 미치는 것도 아니다. 당장 느리고 불평등한 백신 접종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출현을 야기할 수 있다. 소위 백신 독점, 민족주의, 아파르트헤이트가 공멸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전히 빈곤으로 인한 고통은 ‘치유되어야 할 불의가 아니라 인내되어야 할 불가피한 불행’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이러한 근시안적인 논리는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유엔 사회권위원회, 빈곤과 인권, 건강권, 기업과 인권, 개발권, 국제연대 관련 유엔특별보고관이나 워킹그룹 등 유엔 인권기구들이 지속적으로 입장을 내고 있다. 모든 사람은 안전하고, 효과적이고, 적시이고, 최고의 과학발전 결과 적용에 기초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접근권을 갖고 이는 건강권의 핵심이다. 따라서 국가들은 국내에서의 평등한 백신접근권 보장뿐 아니라 초국경적으로도 국제 협력과 지원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은 국제 연대와 협력을 통해 정부들의 백신 접종 노력에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생명을 구해야 할 때이지 기업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긴 협상이나 장애물 설치 로비를 할 때가 아니다. 지식재산권은 인권이 아닌 사회적 기능을 하는 사회적 산물이고 세계무역기구(WTO)가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트립스)과 공중보건에 관한 선언(2001년)에서 밝혔듯이 지식재산체제는 “공중보건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관련 기업들의 책임, 적어도 백신접근권을 포함한 건강권을 존중할 의무의 실현을 포함하여 이를 감독하고 관련 법제를 정비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함께 가야 한다. 트립스 협정의 일시적 유예, 기술 이전, 생산시설의 확대 등 다양한 조치의 가능성을 열고 그 장애 요소들을 엄밀하게 점검하는 즉각적인 행동이 요구된다. 유엔, 세계무역기구, 지역인권재판소, 주요 다국적 제약사 소재 국가나 대안적 접근을 반대하는 국가 등에서의 시민사회 옹호 활동도 좀 더 가시화되어야 한다.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 없이는 공감도 공존도 없다는 것을 코로나19는 이미 충분히 보여줬지만 현실은 세계적 불평등의 민낯을 드러내주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하나.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국경에 갇힌 고립주의와 국가주의는 국경을 넘는 폭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