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어원은 동맹·연맹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fascio’(파쇼)다. 원래 공화주의자, 생디칼리스트가 애용하던 이 단어는 1919년 무솔리니의 친위조직이 ‘민족파시스트당’이란 이름을 채택한 뒤부터 극우적인 정권이나 운동을 일컫는 정치 용어가 됐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파시즘의 정치경제적 배경에 주목했다. 1930년대 코민테른이 정식화한 파시즘은 “가장 배외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금융자본의 테러독재”다. 반면 빌헬름 라이히 같은 문명비평가들은 파시즘을 “인간이 지닌 보편적 성격구조의 조직화되고 정치적인 표현”으로 이해했다. 대중의 좌절과 분노를 가공된 적에 대한 공격으로 분출시키는 파시즘의 동원방식에 주목한 것이다.
1980년대 한국에선 남미에서 수입된 ‘신식민지파시즘론’이 위력을 떨쳤다. 이 담론은 정치적 선택지를 ‘혁명이냐 파쇼냐’라는 양자택일 프레임에 가둠으로써 체제 개혁을 위한 일체의 노력을 개량적 기회주의로 단죄했다. 그 역편향으로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것은 파시즘을 낳는 습속과 심리구조를 강조한 ‘일상 파시즘론’이었다. 최근엔 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론이 널리 통용된다. 팩스턴은 파시즘을 “대중 지지를 업은 민족주의 정당이 전통 엘리트층과 협력해 어떤 윤리적·법적 제약도 없이 내부 정화와 외적 팽창을 추구하는 정치 행동의 한 형태”로 규정한다.
‘조국 흑서’ 집필에 참여했던 권경애 변호사가 <무법의 시간>이란 책을 냈다. 책에서 그는 조국 사태 이후 드러난 집권여당과 지지자들의 행태가 팩스턴이 열거한 파시즘의 징표와 일치한다고 했다. 그 징표란 “자기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 “법률적·도덕적 한계를 초월해 적을 향한 어떤 행동도 정당화하는 정서” “지도자의 본능이 보편적 이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등이다.
권 변호사의 진단을 두고 현 정부와 지지층의 행태에 비판적인 이들 사이에서도 지나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현상이 드러내는 파시즘적 경향과 징후를 비판하는 것과 정권이나 체제 자체를 파시즘이라 규정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비판하고 바로잡기 위해 그 대상을 ‘악마화’하거나 현실을 ‘지옥화’할 필요는 없다. ‘위선’에 대한 반대가 ‘위악’일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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