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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그때 그 인천 학원강사는 잘 지내고 있을까

등록 2021-07-19 13:31수정 2021-07-20 02:40

[세상읽기]

정민석|인권재단 사람 사무처장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예정되어 있던 약속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여기에 무더위까지 겹치니 몇 분만 걸어도 마스크 안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각종 변이를 일으키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는 곧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커졌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이제는 당장 내일 감염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지난해 5월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단순한 수치로 비교할 수 없겠지만 사건이 일어난 당시 5월 한달간의 누적 확진자 수는 703명, 하루 평균 22.7명이다. 지금과 비교해 현저히 적은 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혐오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클럽에 다녀온 사람들은 자신의 동선보다 정체성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했고 성소수자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무책임한 집단으로 낙인찍힌 채 숨죽여 지내야만 했다.

당시 ‘거짓말 인천 학원강사’로 불리며, 징역 6개월이라는 무거운 죗값을 치른 사람이 있다. 당사자가 겪었을 극심한 공포와 죄책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은 마녀사냥식으로 그의 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사회적 경제적 큰 손실이 발생하였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겪어야만 했던 공포심과 두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판단했다. 성정체성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 그의 고백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비교해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다. 성소수자 차별에 침묵했던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개인을 단죄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감염병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충분히 다하고 있는가. 감염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4차 대유행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이고, 책임은 누가 졌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얻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를 조심하고, 확진자를 비난하며, 감염되지 않기 위해 각자도생하면 되는가. 질병 전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지만, 그 원인을 사람에게서만 찾을 수 없다. 사람에게 죄를 쉽게 물을 수 있어도 경각심과 공포심만 불러일으킬 뿐 질병 예방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지 않으면서 처벌과 규제를 강화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덧씌우며,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쉬운 통제 방법인가.

코로나 확산의 가해와 피해의 경계는 모호하다. 질병 전파를 ‘가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확진자가 ‘타인의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지금의 상황에선 그 사람 또한 누군가로부터 감염되었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로부터 감염되었다면 동시에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우리 모두는 가해와 피해라는 위태로운 경계에 서 있고,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타인을 해할 범죄자로 낙인찍힐 수 있음을 인천 학원강사 사건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4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문득 인천 학원강사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정체성이 알려지고, 직업을 잃게 된 상황에서 고통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차라리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때 그 사건이 벌어졌으면 어떠했을까. 두려움에 짓눌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찾지 못한 답과 더 던져야 할 질문이 너무 많다.

‘거짓말 인천 학원강사’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그의 이름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권단체들이 재판부에 제출했던 탄원서 마지막 문단을 옮겨본다. “재판 이후 그가 마주해야 하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져도 직장을 잃거나 사람 관계가 파탄 나지 않는 사회,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길 바랍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인권을 우선 생각하는 법의 정의가 그에게도 꼭 닿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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