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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강자의 시선

등록 2021-07-20 14:02수정 2021-07-21 10:18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청소노동자분이 휴게실에서 세상을 떠난 후에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에 관해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내가 있는 중앙대에서도 2013년에 청소노동자 노조가 설립됐고 처우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과 농성이 계속된 바 있다. 연일 언론보도가 이어졌고 정치권, 시민·노동단체의 관여로 확대됐다. 많은 교수·학생이 노조와 연대했고 학교와 충돌하기도 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노동자분들을 대학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세우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교수와 학생들도 그동안 몰랐던 노동현실을 자각하게 되었고, 세상을 보는 시선과 삶 자체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교수·학생과 노동자분들의 관계가 달라졌고, 여러 제자가 이후 노동단체에서 일하게 됐다.

중앙대의 경험을 돌아봤을 때, 이번 사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특정 인물에 대한 단발적 분노와 비난보다는 여기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성찰하고 개선책을 찾는 방향이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우리 삶의 다양한 공간에서 약자의 고통에 무지한 강자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에서 당연시되는 논리들의 허구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돈과 힘, 권위를 가진 쪽에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많은 것이 약자에겐 압박, 모욕, 폭력일 수 있다. 보복, 처벌,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즉각 이의를 표현하기도 어렵다. 강자들은 그동안 고맙다, 괜찮다는 겸허한 말만 들어왔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믿기 쉽고, 어떤 계기를 통해 고통의 증언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과장, 왜곡, 허위라고 오해하기 쉽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결핍된 존재’로 환원하는 강자의 시선은 큰 폭력이다. 노동사 연구의 대가인 하와이대 구해근 교수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노동자 투쟁의 가장 큰 바람이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임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강자들은 흔히 이들을 ‘돈이 필요한 존재’로 환원한다. 산재 인정과 보상금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시선이 주는 수치의 깊이를 가벼이 여기면 안 된다.

고용주와 노동자, 직장 내 위계, 성적 지배, 교육자와 피교육자 등 다양한 관계에서 이 같은 강자의 무지는 구조적 폭력의 원인이 되는데, 이런 문제는 일회적인 반성이나 개선 조치로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지는 이해의 부재에서 오고, 이해의 부재는 관심의 부재에서 오며, 관심의 부재는 관심을 가질 필요성의 부재에서 오고, 굳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없음은 곧 힘의 불균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결책은 이해 당사자들의 동등한 참여권을 보장하여 쌍방적 이해와 조정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하지만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 있는 주체들이 ‘동등한’ 위치가 된다는 것은 현실에서 쉽지 않다. 그것은 약자의 구조적 취약성을 상쇄할 실질적 대항력이 확보될 때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사회의 연대가 필수다. 노조, 정당, 시민사회 등 ‘외부세력’을 불온시하는 것은 약자들을 고립시키는 강자의 논리다. 그럴 경우 약자들은 직장, 가정, 교실 등 좁은 공간에서 힘 있는 상대 앞에 두렵게 서야 한다. 이런 불균형을 상쇄할 강력한 수단이 바로 외부의 협력자들이다. 강자들은 늘 외부세력을 ‘문제’로 부각시키지만, 내부와 외부 구성원을 아우르는 폭넓은 공간에 있어야 약자들은 대등해질 수 있다.

언론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선정적인 여론몰이를 경계해야 하지만, 약자를 지지하는 여론에 대한 환멸은 다수의 지지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강자의 시선일 뿐이다. 폐쇄성과 비가시성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최악의 환경이다. 언론은 사회문제의 실태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끝으로 제도적 임파워먼트다. 이승윤·서효진·박고은은 ‘한국 청소노동자는 왜 불안정한가?’라는 논문에서 간접고용된 청소노동자들이 연금·고용보험 혜택을 거의 못 받을 뿐 아니라, 건강위험에 처했을 때 산재 판정을 받기도 어려운 현실을 강조했다. 어떻게든 아프지 않고 힘든 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방의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제도적 버팀목이 생겨야 노동자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연대의 메시지를 멈추지 말자. 개인의 책임이 아닌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동등한 관계를 만들어가자. 그것이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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