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2015년 민법 개정을 통해 그동안 물건의 일종으로 취급하던 동물에게 ‘지각력을 지닌 생명체’(êtres vivants doués de sensibilité)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프랑스는 이미 1976년 자연보호법에서 동물이 지각력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 형법에서도 물건에 대한 범죄와 동물에 대한 범죄를 구분해왔다. 반려동물·가축·야생동물 등의 보호를 위한 별도의 법들도 존재한다. 이렇게 개별 법률로 보장하고 있는 동물의 법적 지위를 기본법인 민법에까지 규정함으로써 법의 통일성을 기하고 선언적 강조를 한 셈이다.
미국의 경우 동물의 법적 지위를 일괄적으로 규정하는 법률은 없지만, 역시 개별 입법을 통해 물건과 뚜렷이 구분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 법원은 동물 학대 사건 재판에서 학대당한 동물들을 각각의 ‘피해자’로 간주한다. 물건은 여러개를 부숴도 하나의 범죄로 다뤄지지만, 복수의 동물을 학대하면 복수의 범죄가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코네티컷주에서는 ‘피해자’인 동물을 위한 특별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대다수 주에서는 가정폭력 사건에서 반려동물도 ‘접근 금지 명령’의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이혼소송에서 반려동물을 재산 분할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고, 인간이 아닌 해당 동물의 복리를 고려해 누구와 함께 살게 할지 결정한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의 매매를 제한하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2019년)와 메릴랜드주(2020년)에서는 유기·학대에서 구조된 반려동물 이외에는 펫숍에서 사고팔 수 없도록 하는 법이 도입됐다. 이후 많은 지자체들이 상업적으로 길러진 반려동물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대량 사육으로 인한 동물의 고통을 막고 유기견 입양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동물이 물건이 아닌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욱 타당성 있는 입법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이 19일 입법예고됐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민법의 선언적인 규정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개별 법률의 몫이다.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여전히 물건에 관한 법리를 따른다는 단서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법적 지위는 인간과 물건 사이의 어디쯤인지, 앞으로 사회적 논의 속에 구체적 법제도를 고안하면서 답을 찾아가야 한다.
박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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