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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 남자들이 왜 웃기냐면

등록 2021-07-21 15:44수정 2021-07-22 02:38

[숨&결]

강도희·최연진|대학원 석·박사 과정(국문학)

바야흐로 ‘부캐’의 시대다. 본래의 ‘나’와 다르게 설정한 부차적인 캐릭터를 뜻하는 부캐는 단순히 극중의 한 캐릭터가 아니라 원래 본체가 안 보일 정도로 구체적인 세계관과 인격을 갖는다. 다양한 세계와 개인 일상의 집합소인 유튜브가 그것의 주 무대가 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단연 떠오른 ‘한사랑산악회’는 2019년 만들어진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한 코너로, 30대 개그맨들이 50대 남성 네명으로 분장해 산악회 활동을 하는 내용이다. 가죽 케이스를 씌운 스마트폰이나 귀 뒤까지 싹싹 씻는 약수터 세수 등 완벽한 고증도 묘미이지만, 구세대 남성들이 ‘아무 말이 없어서 좋은’ 그들의 산속에서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화면 밖 젊은 시청자는 폭소를 참지 못하고 만다. 아들 넋두리를 하며 ‘열정’만이 “인섕”의 정답이라 믿는 회장 김영남, 자기 개그에 산이 떠나라 크게 웃는 부회장 이택조, 시도 때도 없이 80년대 미국 이야기를 꺼내는 재미교포 배용길과 자기는 대구 출신인데 왜 ‘제물포’(‘쟤 때문에 물리 포기’의 줄임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교사 정광용까지 아재들은 화면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고립되며 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게 왜 안 웃긴지가 이상할 정도인데, 다른 세대는 외려 그런 우리를 흥미로워한다. 어머니께 영상을 보여드린 한 친구는 “남편 생각난다”며 질색하시더라는 말을 전했으며, 중학생 동생은 “누나 혹시 ‘아재 취향’이냐”며 공감 못 했다. 그러나 한사랑산악회가 지금 2030에게 뜨는 이유는 그것이 다큐멘터리도, 팬 서비스 영상도 아닌 정확히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자식, 동료 직원, 학생으로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 세대의 과도한 자의식과 모순이 재차 수집되고 박제된 이 상태는 그 자체로 호와 불호의 사이에서 안전하게 즐길 대상이 된다.

‘귀여움’은 우리가 예측이나 통제 가능한 대상에게 주로 느끼는 감정이다. 원칙과 질서를 철저히 따지는 듯하지만 실상은 웃고 삐치고 억울해하는 등 감정으로 가득 찬 이 아재들의 세계가 내겐 차라리 앙증맞은 것과 유사한 이유로, 나의 친구들은 ‘피식대학’의 다른 코너인 ‘비(B)대면 데이트’에 나오는 ‘최준’과 같은 20~30대 남성에 빠지기도 한다(놀랍게도 그를 제외한 이들은 한사랑산악회와 동일한 인물들이다). 비대면 데이트의 상대인 시청자, 즉 ‘소개팅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감성·재력 등을 알리기 바쁜 이들 역시 절대 망가지려 하지 않지만 이미 망가지고 있는 자의식이 웃음의 포인트다. 댓글로 자주 쓰는 말투, 출몰 지역, 이별 방식 등 추가적인 디테일을 제보할 정도로 우리네 일상적 경험이 잔뜩 묻어 있는 이 캐릭터들은 분명 하나같이 ‘비호감’ 유형이지만, 그것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비호는 귀여움이 된다. 시청자는 강제로 덧씌워진 ‘그녀’의 포지션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들 중 누가 제일 ‘길들이기’ 쉬울지를 가늠해 차악을 고른다.

이를테면 ‘피식대학’의 콘텐츠는 갈수록 더 추상화(일반화)되고 있는 50대 남성 혹은 20대 남성 안의 개별적인 구체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떤 이들의 리얼리티가 이제 나만 웃긴 게 아님을 알려준다. 사실 ‘나’ 아닌 누군가를 모방해 웃기는 일은 어느 정도의 타자화가 수반된다. 맹구, 김여사, 마이콜, 노란 옷의 유치원생 등 한국 희극사의 주요 캐릭터들이 장애인, 아줌마, 흑인, 아이 등 사회적 소수자의 특정 부분을 과장해 탄생한 역사는 우리 사회에서 다수의 웃음이 어떤 이들의 희생을 전제하는지 짐작게 한다. 그런 점에서 무대가 아니어도 매일같이 타인의 시선 앞에 서야 하는 이들보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지 좀처럼 고민할 일이 없었던 이들을 흉내 내는 코미디가 주목을 받는 것은 웃음의 영향력에 대한 감각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콘텐츠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웃음은 그 자체로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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