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은 박목 박과 오이속의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열매의 과육이 부드럽고 달콤해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1990년대까지도 값비싼 수입과일의 대명사였다. 백화점 수입식품 코너를 가야 ‘실물 영접’이 가능했을 정도다. 2000년대 들어 온실·하우스를 이용한 국내 생산이 늘면서 중저가 대형마트 매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멜론의 생과육을 맛보게 된 건 대체로 2000년대 이후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멜론의 맛과 향만큼은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는데, 그 공의 팔할은 빙과업체 빙그레가 1992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막대형 아이스크림 ‘메로나’에 돌려야 한다.
메로나는 생산 첫해 210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빙과업계 신제품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멜론의 상큼한 풍미와 부드러운 크림맛이 조화를 이뤄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멜론이란 과일 자체를 접해보지 못한 연구원들이 그 맛과 향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생산 초기엔 멜론의 향만 집어넣었다. 지금은 초록색 머스크멜론 시럽을 첨가한다. 실제 과즙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빙과류에 대해선 표기 규제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표된 ‘식품산업 통계정보’를 보면 메로나 매출액(559억원)은 월드콘(662억원), 투게더(658억원), 붕어싸만코(628억원), 하겐다즈(626억원)를 바짝 뒤쫓았다. 전체 빙과류에선 5위지만, 막대형 아이스크림으로는 부동의 1위다(2위 비비빅·346억원). 편의점 매출액만으로는 메로나가 모든 빙과류를 통틀어 1위라는 통계도 있다. 수출도 꾸준히 늘어 세계 21개국에서 판매된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빙과류 매출액의 70%를 메로나가 차지할 정도다.
지난 2일 저녁, 전북 정읍에 사는 50대 남자의 부고가 전해졌다. 30년 전 메로나 개발을 주도한 김성택 전 빙그레 연구실장이었다. 대기업 총수 일가도, 유명 경영인도 아니었지만 이례적으로 대부분의 언론 매체가 그의 별세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국민 아이스크림 메로나 아버지 잠들다’란 제목으로 그를 애도한 매체도 있었다. 한국의 서민들에게 고급 과일 멜론의 첫맛을 일깨워준 ‘빙과 장인’에게 합당한 예우다.
이세영 논설위원
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