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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전체 지도와 사회적 불평등

등록 2021-08-04 20:14수정 2021-08-05 02:36

[숨&결] 김준 |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빈틈 하나 없이 완성된, 첫번째 인간 게놈(유전체) 지도가 발표됐다. 2001년 약 3조원이 투입된 인간 유전체 지도 초안이 발표된 지 20년 만이다. 이번에 완성된 인간 유전체 지도는 20년 전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어 기존 유전체 지도에 남아 있던 900여개의 빈틈을 모두 메워낸 첫 완성품이다. 이 빈틈 중 일부는 특정 유전병과 관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그 빈틈을 메움으로써 해당 유전병에 대한 실마리를 확보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인간 유전체는 30억개의 문자로 이뤄진 책이다. 여기에는 흔히 생물이 제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인 유전자에 관한 정보와 유전자를 켜고 끄는 조절 정보가 담겨 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은 좁쌀보다도 작은 수정란에서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면 수정란은 2개, 4개, 8개 등으로 차츰 나뉘고, 이 과정에서 새로 태어난 세포마다 서로 다른 유전자를 켜고 끄며 서로 다른 기능을 지닌 다양한 세포가 된다. 면역세포는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위험물 제거에 필요한 유전자를 작동시키고, 신경세포는 신호를 빠르게 전송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를 작동시킨다. 각 세포가 유전체에 담긴 정보를 이용해 서로 다른 유전자 조합을 작동시킴으로써 수정란은 인간이 된다.

이 유전체라는 책에는 쉽게 오타가 쌓이고, 이 오타는 유전자 정보나 조절 정보를 바꿔 다양성과 질병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오래된 책의 글자가 희미해지듯 나이가 들면 유전체에 적힌 문자가 바뀌며 오타가 쌓일 수 있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유전체 정보가 전달될 때에도 오타가 생겨날 수 있다. 유전체 정보라는 책을 전달해주려면 복사를 해야 하는데, 복사를 하는 도구가 완벽하지 않아 종종 오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라 부르는 오타이다. 돌연변이를 통해 생겨난 오타는 복제를 통해 자손에게로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정착하기도 한다. 이렇게 널리 퍼진 판본들에 남아 있는 공통 오타들은 자연변이라 부른다. 오타의 대부분은 인간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지만 일부는 키, 눈동자 색깔, 털 분포처럼 사람 사이의 차이에 기여하기도 한다. 때로는 유전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애먼 시간에 애먼 세포에서 작동하게 해 유전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유전병 환자의 유전체에 쌓인 돌연변이와 자연변이를 연구한다면 유전병 예방 및 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변이가 유전병의 원인이라면, 유전병에 취약한 사람들은 그 변이를 유달리 더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유전병에 취약한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유전체 정보를 비교했고, 여러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변이를 찾아냈다. 유전체 지도는 이렇게 비교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먼저 유전체 지도를 기준으로 환자 집단의 유전체 및 환자가 아닌 집단의 유전체에 존재하는 변이를 각각 확인한다. 그리고 환자 집단과 환자가 아닌 집단이 지닌 변이들을 비교함으로써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변이, 유전병의 원인 변이를 찾아낸다. 그러니 기준이 정확해야 한다. 유전체 지도를 빈틈없이 완성하고자 했던 이유이다.

물론 좋은 유전체 지도를 확보하고 유전병의 중요한 원인을 밝혀낸다 해도, 오늘날 모두가 건강하게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유전체에 담긴 정보로는 해독할 수 없는 사회의 불평등이 건강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52시간도 부족하다고 외치는 사회에서, 심지어 60시간, 80시간 일해봐야 편히 지낼 공간 한뼘 구하기도 쉽지 않은 사회에서, 스스로 혹사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건강한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유전체 정보가 아닌 증빙 서류를 통해 전달되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면,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도 유전학으로는 그 어떤 변이도 찾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불평등은 유전체가 아닌 사회에 남겨진 빈틈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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