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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후위기 시대의 민주주의

등록 2021-08-05 18:42수정 2021-08-06 02:37

[세상읽기]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한 단어로 불러온 정치체제의 실재 모습은 다양했다. 당대 시민들이 발 디딘 삶의 조건과 양식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였던 고대 그리스 민주정의 작동원리와 자본주의 시장을 토대로 한 근대 민주정의 그것이 같을 수는 없었다. 제조업 대공장 시대 민주주의와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현재의 모습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모습을 규정짓는 근본 조건은 무엇일까? 의심할 바 없이 기후위기다. 민주정의 최종 결정권자는 시민이다. 그 시민들의 삶을 규정짓는 이보다 더 큰 조건은 없기 때문이다. 지구적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시민들에게 어떤 민주정이 필요할까?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 패키지는 ‘그린딜’ 혹은 ‘그린뉴딜’로 불린다. 나라마다 우선순위와 강조점에 차이는 있지만, 에너지·산업·이동수단·건축물·폐기물·농업 및 먹거리 영역에서 탄소 발생량을 대폭 줄여 인류가 생존 가능한 조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획은 현재 인류가 생존과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포괄한다. 모든 영역에서 사회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것은, 인류의 인식과 가치, 생계 활동과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거대한 전환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동체 생존이 달린 문제이므로 전환 비용을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게 전가할 수 없고 함께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고 옳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부는 탄소배출 감소의 목표치를 설정할 수 있지만, 그 목표치의 달성은 기업과 가계, 개인들의 참여와 실천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업들의 좌초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과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재생에너지 생산과 관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먹거리 산업의 전환 과정에서 시민들의 협조는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는가?

이 메가 프로젝트의 관리자는 반드시 시민이 아닐 수 있다. 만약 이 기획을 관료나 민간기업, 특정 전문가집단이 주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이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좋은 권위주의는 정당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 권위주의 방식으로라도 생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마트 감시사회’의 도래가 점쳐지기도 한다. 인간이 사는 모든 곳에서 탄소배출을 급격히 줄여나가려면 에너지의 생산, 유통, 소비 전 과정에 스마트 기술이 접목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정보로 변환하여 집적하고 관리하게 될 때, 시민들이 이 집적과 관리에 참여할 뿐 아니라 제어할 통제력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감시사회의 두려움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며 살아갈 수 있다.

다행히 이미 인류는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더 작고 더 다양한 민주주의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전환하고 관리하고 집적하며 결정하는 모델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앙정부는 아직 ‘계획을 세우겠다는 계획’ 단계에 있지만, 동네 단위에서는 다양한 기후위기 대응 모델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우리집 옥상과 동네 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동네 재생에너지 관리는 누가 참여해서 하면 좋겠는가,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 충전소나 공유주차장을 어디에 설치하면 좋은가, 충전소 관리는 누가 하면 좋은가, ‘제로웨이스트’의 생활방식은 어떻게 실천 가능한가, 동네 단위 자원순환을 위해 어떤 일이 필요하며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먹거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가 등은 온-오프라인 시민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가 공유되어야 할 뿐 아니라 숙의되어야 한다. 이런 힘들이 모여야 화석연료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함과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국가적 수준의 시민적 동의가 형성될 수 있다. 대선과 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몇 퍼센트 감축이라는 목표치만이 아니라, 그 목표치를 시민들의 참여로 가능하게 만들 민주주의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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