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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진보에게 필요한 건 ‘존재 증명’ 아니라 ‘현실 반영한 실천’이다”

등록 2021-08-06 04:59수정 2021-08-06 07:48

[박찬수의 직선]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보수 카르텔 강고하다’는 말 들으면 숨이 막힌다
문재인 정부 내 생각과 다르게 가면 비판할 수도

국정운영 책임진 쪽만 비판, 독자 소통이 막히더라
다음 호부터는 진보-보수 비판을 좀 균형 맞출 것

‘평등’ 위한 방법론 현실적으로 짚는 게 진보의 자세
우리 사회 잘못되는 게 1% 특권층만의 잘못인가
상위 20%가 양보 안하면 불평등 문제 넘어설 수 없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28일 오후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개인 서재 겸 사무실에서 박찬수 <한겨레> 선임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 교수는 “돌아섰느냐”는 질문에 “그런 얘기 들으면 그냥 웃는다”고 말했다.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28일 오후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개인 서재 겸 사무실에서 박찬수 <한겨레> 선임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 교수는 “돌아섰느냐”는 질문에 “그런 얘기 들으면 그냥 웃는다”고 말했다.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전주 시내에 있는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개인 사무실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수만권의 책이 넓은 사무실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강 교수는 책을 많이 읽고 또 책을 많이 펴내는 걸로 유명하다. 젊을 때는 한달에 250만원을 책을 사는 데 썼다고 한다. 요즘은 얼마나 책을 사냐고 물으니 “30만~40만원어치 산다. 과거엔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다 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고 책 둘 공간도 마땅치가 않다”고 답했다.

강 교수는 1990년대 <인물과 사상>이란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실명으로 비판했다. 비판은 익명으로 하는 게 불문률이었던 한국사회에서 강 교수의 행동은 금기를 깨는 것이었다. 수많은 인사가 그의 칼날에 피를 흘렸다. 대표적인 이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였던 이문열씨였다. 강 교수는 이문열 작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기존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 기득권 세력을 즐겁게 해주는 데엔 거의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런 그가 한동안 인물 비평을 중단했다가 지난 6월에 <더(THE) 인물과 사상>을 다시 내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월간지가 아닌 단행본 형태지만, 3개월에 한번꼴로 계속 낼 생각이라고 한다. 복간호의 비평 대상에 오른 10명은 책 순서대로 김종인 윤석열 추미애 문재인 고민정 김어준 윤호중 이해찬 김상조 박원순이다. 10명 중 8명이 현 정부 쪽 인사다. 강 교수는 요즘 문재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걸로 유명하다. 인물 선정에도 그런 생각이 작용했을 터이다.

10여년 전부터 강 교수의 글이 직선에서 조금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통, 성찰, 이해를 많이 강조하는 게 그렇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진보 성향인 현 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으니, 그건 어떤 연유에서일까.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990년대 <인물과 사상>에서 실명 비판을 처음 시작했고 당시엔 금기시됐던 호남 차별이나 김대중 죽이기, 조선일보 문제 등을 쟁점화했습니다. 그때 교수님 주장은 정말 굴곡 없는 직선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젊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시대 상황도 있었구요. 가령 제가 그때 가졌던 생각 중에 하나는 정치인 김대중을 이렇게 부당하게 죽이나, 그러면 김대중 비판에 대한 반비판을 내가 해야겠다, 그런 거였죠.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내린 평가에 따라 일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예전에 했던 비판을 되돌려 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느끼는 게 있죠.”

―어떤 느낌입니까?

“시대 상황에 대한 평가는 어차피 주관적인데, 저의 주관성을 근거로 조금 독단적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생각하면 미안하고 죄송한 분들이 많죠.”

―그 시절 교수님이 비판했던 이문열 작가가 올 1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교수님을 언급했습니다. ‘강준만도 돌아섰지 않나. 더는 (현 정부에) 찬성 못 하겠다며 선긋기를 한 거다’ 이런 말을 합니다. 정말 돌아선 게 맞습니까? 돌아섰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돌아섰다고 그러면 일단 저는 웃죠. 예, 웃고요. 사실은 돌아섰다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듣는 게 댓글입니다. 제 칼럼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제가 정말 완전히 돌아섰기를 바라는 어떤 염원 같은 게 느껴집니다.(웃음) 왜냐하면 그래야 그분들의 비난이 정당화 되거든요. 그런데 돌아선 게 누구예요, 제가 아니죠, 문재인 정부죠. 제 기준에 의하면 내가 문재인 정부를 이러이러한 이유로 지지했는데, 다르게 가면 비판할 수 있는 거죠. 그분들 눈에는 제가 돌아선 것처럼 보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 교수님이 칼럼에 쓰신 것처럼, 망하라는 비판과 잘되라는 비판은 다르다, 그런 얘기인가요?

“그렇죠. 더 잘 되라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거를 구별하지 못하고 그냥 무조건 공격하니…”

―그런 비판이 보수 언론의 현 정부 공격에 활용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비판이 성찰이 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반대편의 잘 드는 칼로 쓰이니까 그런 불만이 나오는 건 아닐까요?

“그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면 ‘너,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빠졌구나’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저는 그 전제에 동의를 안 해요. 그 전제라는 건 뭐냐, 보수 언론이 하는 주장은 다 틀린 거고 배격해야 한다는 거예요. 보수 언론이 하는 말 중에서 맞는 말도 있잖아요. 저도 예전엔 그런 주장을 했기에 지금 그런 심정을 잘 알아요. 하지만 제가 안티조선을 말할 때(1990년대)는 조선일보가 정말 힘이 막강했을 때였어요. 지금은 조선일보가 힘이 있나요, 모든 신문이 다 내리막길인데.”

― 그 부분이 좀 의견이 갈리는 지점인데요, ‘비록 진보 정권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보수 우위고 이른바 조중동과 같은 보수 카르텔의 힘이 엄청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고, 또 ‘우리 사회 지형이 변했다, 이제는 최소한 보수 우위는 아니다’라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인식의 차이에서 태도가 달라지는 측면도 있는 거 같아요.

“그렇죠. 맞아요. 제가 말씀드린 보수 우위라고 하는 건 정치 지형을 놓고 하는 이야기에요. 김종인씨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가서 ‘앞으로 우리 보수란 말 쓰지 말자’ 그랬거든요. 과거에 ‘진보’라는 딱지가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잖아요, 보수가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할 정도면. 그런데 (현 정부) 열성 지지층에선 지금도 절대적으로 보수 우위고 기득권 카르텔이 꽉 쥐고 있는 상황에서 겨우 청와대와 국회만 우리가 이겼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좀 숨이 막힙니다. 그 말이 틀려서 그러는 게 아니라요,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자본주의 아래선 보수가 강할 수밖에 없죠. 그걸 완전히 바꾸려면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는 게 차라리 정직하죠. 과거에도 그렇게 기울어졌어도 진보 정권이 세 번이나 들어섰던 겁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나아진 건 맞죠.”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번에 복간한 <더 인물과 사상>을 보면, 비평 대상에 올린 10명 중 8명이 현 정부 쪽 인사입니다. 보수보다 진보 숫자가 훨씬 많은데, 그건 지금이 진보 정권이기 때문인가요?

“그렇죠. 제가 전에 출간한 책에도 밝혔는데, 나는 균형을 찾으려고 안 할란다, 그냥 권력을 잡은, 그래서 국정운영의 책임이 있는 쪽만 비판할란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복간호를 내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제 의도와 달리, 독자들이 제 책을 볼 때 ‘아 이 사람은 이런 의도를 갖고 그러는구나’ ‘완전히 문재인 정부만 까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여기더라구요.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소통이 안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더 인물과 사상> 2호부터는 (비평 대상에서 진보와 보수) 균형을 좀 맞추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속마음이 어떻든 진심이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신경써야 한다’고 늘 말해왔는데, 막상 자기 일을 할 때는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그 점에서 내가 조금 문제가 있었구나, 그래서 (진보와 보수 비판을) 섞어서 가려고 하죠.”

―교수님은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을 평가하실 때 어느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얘기 하면 욕 많이 먹겠지만, 저는 지금 진보라고 하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진보로 사실 안 봅니다. 제가 몇주 전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거짓말이다, 그런 제목으로 칼럼을 썼어요.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전 부문에 걸쳐 비정규직을 다 정규직화할 수 있느냐, 경제가 달라지는데 플랫폼 노동자는 어떻게 할거냐, 다 정규직화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진짜 진보라면 계산을 해봐야죠, 이게 가능한 프로젝트인가를. 바람직하긴 한데 여러모로 여건이 어렵네, 그런데 당장 비정규직이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은 문제니까 이걸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게 현실적일 수 있어요. 이번에 민주당 경선 보니까 정세균 후보 공약에 ‘비정규직에 우대 임금 주겠다’는 게 들어가 있던데, 말하자면 그런 거죠. 박용진 후보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진보 전체로 보면 그런 주장은 소수에요. 저는 평등이 중요한 가치지만 평등을 이루는 데서 방법론을 현실주의적 자세로 짚어보는 게 진짜 진보의 자세라고 봐요. 존재 증명을 위해 진보적 주장을 펴는 게 아니라 실천까지 내장한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게 지금 진보가 할 일이죠.”

―이제 진보-보수의 시대는 지났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교수님도 그런 생각이신 겁니까?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무슨 생각을 갖고 그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하죠. 진보-보수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 논쟁은 웃긴다, 이 얘기를 자본의 논리로, 시장 논리로 가기 위해서 말을 하는 분들이 지금 다수죠. 그런 말에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2006년에 <인물과 사상>에서 강남좌파란 단어를 처음 공론의 장에 올린 게 교수님입니다. 이에 관해 책도 두권 쓰셨구요. 처음 강남좌파를 진보 엘리트라고 비판했을 때, 그 단어의 운명을 예감했습니까?

“예감했다기보다, 그때는 명암을 얘기했던 겁니다. 명이 좀더 두드러지길 바랐죠. 그런데 암이 더 두드러진 결과가 나온 거 같아요. 강남좌파의 장점이 있어요. 사회적으로 상층에 속한 사람이 하층에 속한 사람을 생각한다,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일입니까. 꼭 필요한 일이죠. 그런데 암을 보자면, 이분들이 우리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만 있지 구체적으로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는 능력과 마인드는 부족해요. 그런 마인드가 없으면 국정운영의 의제가 달라져 버립니다. 저는 검찰개혁이 중요하긴 하지만, 대표적인 강남좌파적 어젠더라고 봐요. 그게 1년 넘게 국정운영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일 만한 블랙홀로 작용하게끔 하는 게 옳은 건가요?”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9년에 펴낸 책 <강남좌파2>에 보면, 586세대에 대해 “역사적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이 너무 지나치다”고 비판한 대목이 나옵니다. 자부심과 우월감은 종이 한 장 차이 아닌가요? 결국 역사를 끌어가는 건 그런 역사와 사회에 대한 자부심 아닙니까?

“지금 하신 말씀에 100% 동의합니다. 도덕적 우월감이나 자부심, 저는 없을까요? 그것 자체가 나쁘다고는 보지 않아요. 그런데 똑같은 자부심, 우월감이라도 문제는 그분들의 선악 이분법이에요. 상대편을 인정하지 않고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봅니다. 얼마 전 정청래 의원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독립운동가가 노선이 안 맞는다고 친일파에 가담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는데, 국민의힘 들어가는 걸 꼭 친일파에 비유해야 할까요? 최재형씨가 감사원장 그만두고 대선 출마하는 건 이상하죠, 저도 비판적입니다. 윤석열씨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친일파에 비유하는 건 상대방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 아닙니까. 저는 586에 대해, 선악 이분법에 의해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비판한 겁니다. 저는 사실 비판할 자격이 없어요. 그분들이 그만큼 자기 희생해 가면서 운동한 걸 아니까요. 그런데 역사라는 게 참 묘한 게, 그렇게 헌신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이 민주화 이후에 국정운영을 맡게 되니까, 그렇다면 다른 문법이 필요할 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안타깝죠.”

―진보의 엘리트 의식이 문제가 되는 건 우리만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토마 피케티 교수가 말한 ‘브라만 좌파’(재력을 가진 보수와 대비해서 교육 엘리트가 되어버린 진보를 일컫는 말)도 비슷한 뜻인 거 같습니다. 세계적 현상인 진보의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바람직한 의미의 엘리트 의식을 지지하는 사람이거든요. 대학 서열이 완전히 철폐되는 세상이 가능하지 않다고 봐요. 다만, 그 사람이 서열에 따라 얻는 이익이 합당한가, 그것이 문화적 현상으로 비화하면서 상대편에 모멸감을 주는 정도까지 가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진보는 ‘1 대 99 사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자꾸 1 대 99로 몰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지금 당장 종부세 갖고 싸우잖아요, 결국 상위 2%에 매기기로 했는데 ‘2 대 98’로 나눈 거죠. 그래야 갈등을 피할 수 있고 정치인들이 욕을 덜 먹게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게 재벌처럼 엄청나게 많이 가진 1% 특권층만의 잘못입니까.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20 대 80’, 또는 ‘30 대 70’으로는 절대 못 가죠. 그 20, 30에 우리 사회 지식인층과 전문직, 대기업 정규직은 거의 다 포함되니까요. 타깃을 1%로만 한정해서 지금 한국사회의 계층 격차, 소득 격차, 불평등의 문제를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요?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 없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거나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정치인들 누구도 이렇게 20%가 양보하자는 얘기는 절대 안 합니다. 표 떨어지니까요.”

―제가 지난해에, 지금은 구속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김 전 지사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한다고 하니까 진보 진영에서 엄청나게 반대를 했다. 한국 경제 망한다, 미국에 예속된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 맹렬히 비판했던 진보 인사 가운데 내 판단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이가 한사람이라도 있느냐.’ 공감 가는 이야기입니다. 적절한 비판과 과도한 비판의 경계 또는 기준은 뭘까요?

“노무현 정부 말기에 진보 진영에서 굉장히 비판 많이 했죠. 그에 대해 노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갖고 있는 정서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1991년에 리영희 선생이 연세대에서 사회주의의 역사적 패배에 관한 강연을 했습니다. 난리가 났어요. 리영희 선생이 ‘인간은 이기적이라서 사회주의는 안 맞는 거 같다’고 하자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때 진보는 사회주의를 믿었거든요. 그때 맹비난했던 분들, 지금도 사회주의자일까요? 아마 거의 아니겠죠. 이념의 속성이란 게, 경직성이 있거든요. 도그마로 빠지기 쉽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내부 비판은 이념하고는 무관한 거예요. 예컨대 1980년대 제가 ‘문화 종속’과 ‘문화 제국주의’에 관한 글을 많이 썼어요. 지금의 한류는 상상조차 못했죠. 그래서 이번에 한류의 역사라는 책을 내면서 고백을 했어요. 나는 한류의 미래를 전망할 자격이 없다, 사후 분석이나 할 뿐이다. 사과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의 과오를 나름 인정한 거죠. 김대중 대통령 때 일본 문화 개방한다고 하니까 난리가 났잖아요. 한국 대중문화 다 죽는다고. 마찬가지로 진보의 경험에선 한-미 에프티에이는 용납이 안 됐을 겁니다. 진보의 이념 경직성,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에 도전을 한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저는 누구에게 묻고 싶냐면, 도대체 언론은 뭐 하느냐는 거에요. 언론은 정치인들의 과거 발언을 추적해서 이 사람 말이 달라졌다, 그런 기사 많이 내잖아요. 그런데 지식인과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저는 언론의 직무유기라고 봐요.”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전주/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진보가 유연성, 열린 자세, 그런 게 부족하다는 말씀 같습니다.

“제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관해 논문을 하나 썼는데 그게 기사화됐나 봐요. 그걸 보고 어느 페미니스트가 저를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더군요. 정치적 올바름은 중요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요즘 그런 분위기죠. 여론의 역풍이 강하죠. 그런데 한국은 아직 과잉을 염려할 때가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이 자리를 잡아나갈 때다, 다만 과유불급인 점을 명심하자라고 말했던 건데, 그것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대라는 거에요. 아, 여기도 정말 경직돼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2019년 월간 <인물과 사상>이 무기한 휴간에 들어갈 때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미디어환경은 지금도 그대로인데 다시 책을 내기로 결심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9년 휴간한 이유가) 미디어 환경에 더해서 진영 독자가 사라진 거였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도 진영 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면 버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다룬 책은 유튜브하고 똑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진영이 없잖아요. 예전엔 그 덕을 많이 봤던 사람입니다만. 과거에 제 책이 많이 나갈 때는 10만부 넘게 나갔죠. 왜 사람들이 사본 걸까요? 이미 내용은 서로 알고 있어요, 저 사람이 어떻게 쓸지. 자신이 원하는 걸 쓰기 때문에 믿고 사본 거죠. 그런데 제가 그 믿음에서 벗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독자들이 이탈한 거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제가 올 2월에 전북대에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마지막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내가 쓰고 싶은 걸 한번 써보자, 물론 적자를 내면서까지 책을 낼 수는 없구요, 낼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내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은 많은 자료를 섭렵해서 인물 비평을 하시는데,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는 게 나름의 원칙인가요?

“인물을 깊숙이 인터뷰해서 쓰는 게 A급 비평이고, 저처럼 자료를 갖고 쓰는 건 B급 비평이죠. 그런데 사람을 알게 되면 오히려 객관적으로 쓰기가 어려워집니다. 그 사람의 사정이나 장점을 알면 그걸 인정해 줘야 하고..., 그래서 지금 제가 하는 식으로, 만나지 않고서 간접적으로 자료를 통해서 비평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비평 대상에게 한번 만나자는 얘기는 절대 안 하십니까?

“안 합니다. 인지상정이라고, 만나면 오히려 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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