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프리즘] 이정연 ㅣ 젠더데스크 겸 젠더팀장
“여자가 저 혼자이기 때문에 좀 섭섭해요. 앞으로는 이런 대회에 우리 조선 여성도 많이 참가하도록 해주기를 미리 부탁해요.”(<동아일보> 1948년 6월20일)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이 열리기 전 런던으로 떠나는 한국 국가대표 저마다의 각오가 신문에 실렸다. 당시 이화여자중학교에 다니던 19살 박봉식 선수는 52명의 선수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는 육상 원반던지기 종목에 출전했다. 올림픽에 앞서 국내에서 열린 대회에서 그는 세계신기록을 깨기도 했다. 그는 “기록이라고요? 과히 뒤처진 것 같지 않아요”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4회 런던올림픽에서는 18위를 기록했다.
28년의 세월이 흘러 1976년 열린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 여자 배구에서 선수들이 올림픽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백명선, 변경자, 장혜숙, 조혜정, 이순옥, 이순복, 마금자, 박미금, 유정혜, 유경화, 정순옥, 윤영내 선수가 1976년 7월31일 열린 헝가리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했다.
박봉식 선수의 첫 올림픽 출전 뒤 73년의 세월이 지났다. “우리 조선 여성도 많이 참가하도록 해주기를 미리 부탁해요”라는 박 선수의 바람은 조금씩 이뤄져왔다.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가운데 여성은 105명이다. 전체(237명)의 44.3%를 차지한다. 대한민국이 획득한 20개 메달 가운데 9개를 여성 국가대표 선수들이 거머쥐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이 남긴 건 메달만이 아니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듯했다. 코로나19 유행이라는 전세계적인 재난 상황, 사람을 쓰러트릴 정도의 폭염에도 끝까지 모든 것을 불태우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꾸는 꿈이었다.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고서는 보기 어려운, 화면을 꽉 채운 운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에 자꾸 심장이 요동쳤다.
8일 오전 2020 도쿄올림픽 폐막식이 열리는 이날 오전 9시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이 열렸다. 해설위원과 스포츠 캐스터의 설명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소리를 꺼둔 채 화면만을 응시했다. 화면 왼쪽 위 점수판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선수들이 안타까워하고, 포효하고, 웃고, 서로를 다독이는 모습만을 눈으로 좇았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메달권에서는 멀어진 게 분명해졌다. 선수들은 그런 생각이 아예 없는 듯했다. 접전을 벌이다 5세트 막판에 이른 것마냥 끝까지, 끝까지 코트 위에서 뛰었다. 세트 스코어 3 대 0. 4위. 그렇게 꿈에서 깼다.
경기는 끝났지만, 경기장 밖 함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까지 여자 배구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올림픽을 거치며 그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한다. 2019년 3월 국내 여자 배구를 취재할 때 팬들은 말했다. “팬이 한명이라도 더 늘면 좋겠다.” 지금 여자 배구를 또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8월 말 열리는 한국배구연맹(KOVO)컵 대회 일정을 공유하고, 각 여자 배구팀의 장점과 전력, 선수들의 정보를 공유한다. 김연경 선수의 올림픽은 마지막이었지만, 여자 배구 팬들의 올림픽은 이제 시작인 듯 배구를 향한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배구뿐만 아니라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많은 종목에서 여성 선수들을 향한 환호가 컸다. 동시에 여성 선수들을 향한 여성혐오 표현, 성희롱 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성혐오,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조금 열린 ‘성평등 올림픽’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평등한 스포츠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낸다.
박봉식 선수의 73년 전 꿈이 천천히 이뤄져왔다. 다시 꿈을 꾼다. 성차별과 성희롱이 없는 진짜 성평등한 올림픽이 열리는 날을 말이다. 우리에겐 분명히 그런 힘이 있다.
“나는 당연히 여성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꿈꾸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김연경 자서전 <아직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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