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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모|강원도의 왕진의사 그 줄에 그는 없다. 그 줄에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는 ‘그’도 없고 다리를 쓰지 못해 사람들이 도와주지 못하면 대문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그’도 없다. 그 줄에는 집에서 못 나오는 ‘그들’이 없다. 백신접종 센터 앞에 늘어선 줄에는 그곳까지 자기 힘으로 올 수 있는 사람들, 장애가 없는 사람들만 있다. 알고 있다. 급박한 백신 일정에 우선순위라는 게 있고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급한 사람이 먼저 맞고 덜 급한 사람이 나중에 맞을 수 있다. 그러면 묻고 싶다. 과연 집에서 못 나오는 장애인들은 덜 급한 사람들인가. 왕진 가서 인사를 나누며 하는 첫번째 말이 ‘마스크를 써주세요’인 시절이지만 그는 깃털처럼 가벼운 마스크조차도 자기 힘으로는 쓸 수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침대에 눕기 위해서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무리 뼈가 튼튼했던 사람이라도 몇년 동안 와상 상태로 있게 되면 골다공증이 오는 경우가 많다. 바위처럼 단단한 뼈에도 구멍이 생기는데 하물며 지난 몇년간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심장과 한번도 뛰어보지 못한 폐의 기능은 어떨 것인가. 재가 장애인들은 집이라는 요양원에 있는 사람들이다. 코로나19에 걸린다면 걷잡을 수 없이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 현황’에 따르면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이 6.5배 높다. 와상 상태에 있는 재가 장애인은 아마 더 높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백신접종의 계획이 없다. 집에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니 감염될 가능성도 적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재가 장애인들도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정기적으로 나와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병원 가는 날이다. 그도 의사를 만나 약을 처방받으려면 병원을 가야 했다. 머리로 생각하는 일을 목 아래로 전달하는 길이 모두 끊어져 있는 그에게 병원 가는 길은 얼마나 멀 것인가. 코로나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의 말마따나 ‘정말 찜찜해서 하고 싶지 않은 짓’일 수밖에 없다. 방광염이 반복되는 그에게 자가 도뇨관을 할 때 균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찾아갔던 나는 집 안에서 마주한 장면 때문에 얼어붙어버렸다. 집 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10분이면 끝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아 있던 그를 침대에 눕히는 데에만 10분이 넘게 소요됐다. 경추 손상이 있는 그에게 추가적인 손상이 없도록 하기 위해 도르래처럼 생긴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 목을 지지해주면서 침대로 옮기는 과정은 의사인 나조차도 손을 보태기 너무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도 그를 나처럼 생각했다. 침대에 눕는 데 10초도 안 걸리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 내가 의식하는 세상에는 장애인이 있었지만 내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세상에는 장애인이 없었다.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 심장으로 전달되는 길이 끊어진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바라건대 복지부는 나와 같은 잘못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백신접종을 위해 시민들이 서 있는 줄은 접종 순위에서 가장 나중인 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나중인 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그 줄의 맨 뒤로 밀려난 사람은 사실 그 줄에 없다. 그 줄에 서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줄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복지부가 볼 수 있길 바란다. “내가 가지고 가서 맞힐 테니 제발 허락만 해달라.” 전국에서 장애인 주치의 활동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이런 심정일 것이다. 무슨 대단한 봉사 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집에서 나올 수 없는 그를 만났기 때문에 드는 당연한 마음이다. 모든 재가 장애인에 대한 접종을 지원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이미 주치의들이 방문하고 있는 장애인이라도 우선적으로 접종을 허락해달라. 그건 할 수 있지 않은가. 부탁한다. 집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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