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命人)ㅣ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동네 의원도 아니고, 3차 병원이다. 의사들이 모두 쉽고도 친절하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준다. 의사들은 언제나 고심하여 오로지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환자는 절대적인 신뢰로 의사에게 자기 몸을 맡길 수 있다. 의료진은 언제나 환자나 환자 가족의 심정에 공감해준다. 심지어 보호자가 없어 외롭게 병상에 누운 환자에겐 의사가 나서서 사회적 보호자를 만들어준다. 이사장과 원장을 비롯하여 교수진과 전임의·전공의 등 선후배 동료 의사들 사이에 격의가 없고, 그들 사이엔 존경과 애정으로 주고받는 가르침이 있다. 그렇지 않은 의사는 아무도 그를 존경하지 않아서 매우 예외적인 존재 취급을 받는다. 돈이 없어도 환자는 치료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입원 환자의 보호자들은 고통을 나누며 서로를 돕고 위로한다.
이쯤 되면 눈치챈 분들이 많겠지만,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드라마 얘기다.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현실에서 겪은 병원이 떠올라서 한참 투덜댔다. “아무리 드라마가 ‘판타지’를 담는다지만, 이런 병원이 어디 있다는 거야? 차라리 도깨비나 로봇 나오는 드라마가 더 현실적이네.”
그러다가 문득, 소스라치며 생각했다. ‘이런 게 현실이면 왜 안 되지? 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걸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자기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게 아니라 남을 이기는 것,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 공부는 시험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경쟁에 이긴 사람은 으레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전문가는 돈이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지극히 예외적인 존재가 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무엇이 됐든 아주 쉽게 포기해야 하고, 심지어 이제는 서로를 혐오하며 고통마저 전시하고 경쟁하는….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걸 현실이라고 여기게 되었을까? 현실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이런 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며. 드라마 속의 병원은 우리가 한때 당연하다고 믿었던, 사람 사는 세상의 은유인 것이 아닐까? 그런 곳에서 살고 싶지만, 우리가 미처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바로 그 세상 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는 이미 어지러운데, 세상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고 우리를 다그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발표한 ‘과학기술 미래전략 2045’에 따르면, 2045년이 되면 뇌와 기계를 연결하여 뇌파로 다른 사람이나 기계 등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AI)과 인체 삽입형 기기를 활용하여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으며, 인공장기·인공뼈·인공치아 등 신체를 모방 설계하여 젊을 때의 신체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해저터널을 뚫고 전세계가 하루생활권이 되고, 우주 공간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한다. 풍부한 맛과 영양소를 제공하는 알약이 나오고, 인공 태양과 핵융합 발전으로 친환경 에너지가 무한 공급될 거라고도 한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이런 미래가 도무지 미덥지가 않고,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다.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팬데믹과 몇달째 꺼지지 않는 산불, 시도 때도 없이 무섭게 쏟아지는 물 폭탄, 매년 최고·최저 기온을 경신하는 폭염과 한파…, 재난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은 이제 우리의 일상과 현실이 되었고, 우리가 한때 당연하다고 믿었던 사람 사이와 세상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판타지가 되었다.
우리가 정말로 준비하고 맞아야 할 미래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지금 열렬히 함께 꿈꾸고 상상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어느 연구실이나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과학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더불어 살아왔던 자연과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던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소박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