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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가족 같은 군대

등록 2021-08-16 14:03수정 2021-08-17 02:38

[숨&결]

방혜린 ㅣ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예비역 대위

최근에 발간된 김엘리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책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동녘)에서는 우리나라 징병제가 남성이 권력과 기회를 독점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강력한 가부장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여성에게는 군에 입대한 여군이라 할지라도 군인의 고유 업무로 취급되는 작전이나 전투 임무가 아닌, 비서나 행정 위주의 임무를 배정함으로써 군대 내에서도 일종의 돌봄을 수행하도록 했고,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군대 내외적으로 남성 (가장) 중심의 가부장 질서를 튼튼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하고 있다.

단언컨대 우리나라 군대는 국내 어느 조직, 회사보다도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곳일 것이다. 간부로 임관해 초급 지휘관으로 부임지에 가면 대부분 가장 먼저 듣는 소리가 “병사들을 네 가족이다 생각하고 대우하라”는 말이다. 부대마다 충효(忠孝)교육이라는 것도 한다. 부대를 지휘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 왜 효심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이라는 집단이 우리 사회에서 의미했던 바를 짚어본다면, ‘정말 구성원 모두가 가족 같은 관계를 원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지우기 쉽지 않다. 대체로 우리나라 가부장 사회에서의 가족이란, 가장이 있고 가장을 보필하며 가장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가족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형태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를 군에다 대입해보면 지휘관들이 왜들 이렇게 가족 같은 군대 문화 조성에 목을 매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깥일을 책임지고 가족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가장의 역할을 지휘관이 수행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걸 지휘관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체계와 조직 문화는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문제 상황이나 인권침해에 대한 조직원의 민감성을 저하시킨다. 우리는 많은 영내 폭행, 병영 부조리, 성폭력과 같은 악성 사고들이 ‘집안일’로 남았으면 하는 가장(지휘관)의 욕심으로 인해 어떻게 어그러졌는지 잘 알고 있다. 갈등과 문제가 없는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데, ‘너 하나만 참으면 된다. 우리 모두 평화로울 수 있다. 밖에 새 나가면 망신이다’라는 논리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를 옥죄고 입 막아서 해결하려고 했던가. 이런 구조에서 병나고 곪는 것은 피해자뿐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가족문화는 조직원 중 특히 여성 인력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 여군병과가 폐지되고 사관학교 여성 문호 개방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여군들은 주로 보조적인 역할로 인식되었던 인사행정, 보급, 재정 등의 병과나 보직에 집중되거나, 혹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런 자리로 추천받기 일쑤였다. 여군 역사가 70년이 넘지만, 여군에게 전 병과가 개방된 것은 2017년에 이르러서이고, 전방사단 여군 ‘대대장’이 나온 것은 2019년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수의 여군들이 신병교육대로 배치되어 ‘엄마’ 같은 돌봄의 리더십 보여주기를 강요당하고, 섬세하기를 요구받고, 부대 내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받는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가족 같은 군대라는 인식 속에서 여군에게 전통적인 여성, 어머니의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전우애라는 것은 가족 같은 조직문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각자 자신의 직책과 계급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일종의 무형적인 질서다. 군대는 당신을 위한 친목 모임도, 편한 가족도 아니다. 당신이 부른다고 해서 주말을 같이 보내야 하고, 원치 않는 친목 술자리에 불려 나가고, 엄마와 같이 모든 걸 이해해주고 가정사라는 이름으로 덮고 넘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엄연히 수행해야 할 임무와 목표가 있는 엄격한 직업의 공간이라는 것을 부디 우리 군과 구성원들이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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