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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실언과 사탕 / 정남구

등록 2021-08-16 15:42수정 2021-08-17 02:38

미국의 과학저술가 샹커 베단텀은 <숨겨진 뇌>(Hidden Brain)라는 제목의 책에서 ‘의식적인 뇌’에 대비되는 ‘숨겨진 뇌’라는 개념을 새로 내놓았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다양한 영향력, 즉 무의식, 잠재의식, 암시성 같은 개념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의식적인 뇌는 합리적이고, 신중하고, 분석적이다. 이와 달리 숨겨진 뇌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하기 위해 마음의 지름길을 사용한다. 어린이가 세상에 널리 퍼진 편견, 편향을 곧장 학습하는 건 숨겨진 뇌의 작용이다. 의식적인 뇌가 그것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람은 ‘어른’이 된다.

그런데 의식적인 뇌가 통제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첫째, ‘압박감’에 시달릴 때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정치인이 연설 도중 황당한 말을 내뱉는 게 그런 사례다. 둘째, 노인이 매우 피곤해졌을 때다. 나이 든 노인 환자들은 아침보다 오후에 이유 없이 언쟁을 벌일 가능성이 3배나 높다는 연구가 있다. 이럴 때 ‘당’을 섭취하면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입만 열면 실언을 하는 정치인들은 왜 그럴까? 일본의 아소 다로 부총리는 ‘(저출산 고령화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문제다’, ‘성희롱이란 범죄는 없다’ 등 수많은 실언을 쏟아내, ‘실언록’이 있을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아소를 능가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말에 비난이 쏟아져도 ‘내가 뭐 틀린 말을 했나’라고 되뇐다는 점이다. 그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편견을 일부러 드러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의도한 실언’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뒤 튀는 말로 여러차례 구설에 올랐다. ‘왜곡’, ‘와전’이라고 대응하는 것을 보면, 실언 논란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극 공감하고 있음을 알리려고 한 말이 많다. 압박감에 시달리거나 피곤해서 혀가 미끄러져 나온 실언(a slip of the tongue)이 아니다. 말의 전략을 어떻게 수정할지 모르지만, ‘사탕’이 처방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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