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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괴정과 숭년

등록 2021-08-22 13:37수정 2021-08-23 02:07

정나리 대구대 조교수

1900년대 초, 섬진강 줄기에 자리 잡은 평사리엔 끔찍한 “괴정”(콜레라)이 돌고 “숭년”(흉년)이 들었다.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나중엔 송장을 다 거두지도 못해 늑대와 까마귀 차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왜놈’이 돌림병을 묻혀 온 거라 수군거렸고, 인심은 흉흉해졌다. 농경에 기반한 반상의 질서는 이미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었지만 재앙은 다각도에서 엄습해 마을을 변화시켰다. 결국 주인공들은 평사리를 뒤로하고 이주자, 난민, 이방인이 되어 타지를 떠도는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처음 접한 건 1980년대 말에 방영한 대하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어둑해질 때까지 밖에서 친구들과 38선 놀이를 하다가 베란다에서 엄마가 “토지 한다!”고 외치면 정신을 차리고 들어가 보곤 했다. 사무치게 가고픈 ‘고향’이랄 게 딱히 있을까 싶은 우리 ‘세대’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란 대개 지금은 재개발되어 없어진 아파트 단지나 철제 미끄럼틀과 정글짐이 있었던 모래놀이터 또는 콘크리트로 덮은 길들을 배경으로 할지도 모른다. <토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란 게,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서러움이란 게, 한이란 게, 어렴풋이 어떤 세팅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여줄 뿐 아니라 일종의 원형으로 각인되었다. 강청댁의 악다구니나 임이네의 무지막지한 생명력이 그저 재미있었고, 호열자에 걸리지 않으려 끓인 물만 마시며 방에 꼭꼭 숨어서 찬바람 불기만 기다리는 서울 빌런 조준구가 우스꽝스러웠다. 그때는 서희가 제일 좋았다.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은 단연코 빼앗긴 만석꾼 땅을 완벽하게 되찾아낸 냉철하고 강인한 그 시대 아이언맨, 서희였다.

대학 때 비로소 도서관에 처박혀 토지를 읽었다. 유생이나 고관대작들의 한자어투성이 비장한 대화가 나오면 뛰어넘기 일쑤였으나 동경, 연해주, 상해를 넘나들며 20세기 전반부 거대한 역사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평사리 사람들의 운명적인 삶은 흥미진진했다. 결코 소멸되지 않고 얽히고설키어 층층이 쌓이며 만 갈래로 이어지는 강렬한 감정의 고리가 그대로 와닿았다. 고작 두어 번 가본 섬진강이 눈에 선하니 그리웠다.

이번 여름 마주한 평사리는 또 달랐다. 귀녀 때문에 울컥했다. 엉망인 세상을 뒤엎고자 숭고한 혁명을 꿈꾸었던 건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체제의 자의성을 간파했다. 꼬마지주 서희에게 느꼈던 모욕감이 바로 자신의 존엄이 훼손되는 엄청난 ‘불의’의 순간임을 깨닫고 곧장 행동했다. 정 많고 맘 착한 용이와 월선이가 생을 짓누르는 고통 속에서도 담담히 수용했던 ‘우주의 질서’를 노비 귀녀는 단숨에 뻥 찼다. 그가 찾은 출구전략이 천지신명에게 양반의 아이를 점지해 달라 간절히 비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은 시대적 한계이자 비극이지만, 이미 금이 간 ‘모성신화’에 기대어 작동하는 우리의 후기자본주의-코로나 시대도 논리구조는 크게 다를 바 없어 할 말도 없다.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귀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굴하지 않던 그의 분노한 영혼은 극진히 옥바라지하는 강포수 앞에서 마침내 눈물을 떨군다, ‘포수의 아낙이 되어 살걸.’

평사리의 흉년은 역병보다 더한 공포와 절망으로 다가온다. 대체 무슨 자존심인지, 농민들은 굶어 죽을지언정 부자의 고방에 애걸하러 가지 않더라며 ‘이상한 습성’이라 선생님은 관찰한다. 안산댁이 열흘 만에 겨우 보리 한 자루를 구해 돌아온 집엔 이미 숨을 거둔 시어머니와 아사 직전의 시아버지가 누워 있다. 늦었다. 그리고 늦지 않았다. 산불, 홍수, 열돔, 델타 변이, 재앙의 조짐은 더이상 미묘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최참판댁’들은 더욱 견고한 요새가 되어 있고, 우리가 축적해온 더 많은 ‘이상한 습성’들은 과열된 엔진을 가속화시킬 뿐, 새로이 습득하는 ‘작은’ 노력들로는 멈춤은커녕 늦춤도 어려울 것만 같은 기분이다. 밥 한끼 함께하는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아직 못다 읽은 <토지>가 유일한 위로인 늦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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