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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정년의 의미

등록 2021-08-23 19:07수정 2021-08-24 02:38

김원규ㅣ변호사·국가인권위 전 직원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를 정년퇴직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년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선택받은 일이다. 그러나 의사와 무관하게,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면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나는 자격증이 있어서 조금 형편이 낫다고 볼 수 있지만 지난 3월 말 기준 변호사 수가 3만명이 넘었고 젊은 변호사들이 매해 1000여명 이상 나오는데 60살 넘은 인권위 출신 신규 변호사가 시장에서 팔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대부분에게 퇴임 이후란 ‘즐거움’이 아닌 ‘불안과 고통’의 다른 말이다.

정년제도는 두가지 사회적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졌다. 하나는 사람을 노동력으로 보아, 노화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게 되면 신선한 노동력으로 대체하기 위해 가동 연한의 상한을 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를 존중의 대상으로 보아, 정년까지 일하면 보상의 차원에서 그 이후 삶에 대해서는 사회가 책임지는 것이다. 실제로는 두 필요성이 혼재되어 있겠지만 어떤 것을 주되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전자의 관점에서 정년 이후의 삶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배양되긴 불가능하다. 각자 알아서 노후를 보내야 한다. 후자는 정년자들이 고생했으니 이젠 걱정을 덜고 노후를 즐기라는 태도이므로, 정년과 연금이 결합되어야 하고 노년층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참여제도를 국가와 지자체가 마련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년제도는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을까? 현행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년은 60살이고 국민연금의 수급 개시연령은 65살이어서 두 제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또한 정년제도가 오래전에 도입되었지만 국민연금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된 건 1999년부터이므로 연혁적으로 봐도 두 제도는 별개로 설계되었다. 정년과 연금이 연계되고 평균연금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은 공무원, 군인, 교원과 같은 일부 직역 외 우리나라 정년제도는 노동력 순환 목적이 더 강하다.

우리나라 세대 변천사 특징으로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나 경제성장 초입 단계에서 자란 베이비붐 세대를 들 수 있다. 베이비부머 규모가 무려 1700만명 정도 되는데, 평균수명 증가로 대부분 생존해 있다. 베이비부머 중 고령층은 은퇴를 시작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수는 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국민연금제도가 전면적으로 도입되기 전에 소득생활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퇴직 후 생활 대비가 부족하다.

우리 사회 노인 세대는 이미 충분히 불행하다.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만년 1위이며, 2위와 격차도 무척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은 급증하고 있으며 당분간 노인층으로 유입되는 인구의 상당수는 안정적인 노후 대책이 부족하다.

과거 정년제도는 여성에게 더 가혹했다. 한 공기업에서 여성의 정년이 남성보다 빨라 부당한 차별이라는 진정이 들어온 것이 고작 몇년 전이었다. 이후 제도가 개선되긴 했지만 정년 후 그조차 쉽지 않게 선택하는 아파트 경비원 등의 직종에서 발생하는 괴롭힘 사건 보도를 보면 보통의 노동자들이 황혼 시기를 얼마나 고달프게 보내는지 알 수 있다. 그나마 건강이 허락할 때에는 이런 사회적 삶이나마 살아갈 수 있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독립 생활이 어려워지면 대부분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요양시설의 풍경화는 노인들이 다인실 침상 위에서 요양보호사의 보조를 받으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는 자식들은 동일한 삶의 경로를 거부하겠다고 다짐하지만 현재의 제도 아래서는 별로 피할 가능성이 없다.

국가와 사회에 의해 줄곧 경제성장을 위한 노동력으로 취급받고 노동시장에서 효용성이 떨어지면 폐기되는 제도 속에서 살아온 세대가 판박이같이 겪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여태까지는 부모의 일이었지만 곧 내 일이 될 것이다. 이번 대선 기간에 정년을, 그동안의 수고로움에 대한 존중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비로소 모색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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