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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돌봄’을 돌봐야 할 이유

등록 2021-08-30 15:48수정 2021-08-31 02:37

보건의료노조가 6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 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정부 핵심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
보건의료노조가 6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 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정부 핵심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

[숨&결]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온갖 논쟁으로 뜨거운 대선 정국에 노동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청소노동자는 계속 사망하였고 보건의료노조는 파업을 선언하였다. 올해 여름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가 숨진 사건은 당연히 처음이 아니었다. 2년 전인 2019년 여름에도 폭염 속 에어컨도 없는 비좁은 지하 휴게실에서 서울대 제2공학관을 청소하던 고령의 청소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각기 다른 장소에서 유사한 사유로 사망한 청소노동자가 어디 한두 명뿐이었을까. 보건의료노조 역시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단, 이번은 코로나와 1년7개월여 동안 힘겹게 사투를 벌인 만큼 인력 확충과 처우 개선뿐 아니라 공공의료의 확충과 관련된 목소리가 더 긴급하고 간절하게 들릴 뿐.

환경미화원과 의사를 제외한 다양한 보건의료인력은 종사 업종만이 아니라 고용형태도 다르다. 한쪽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주를 이루며, 가장 나은 고용형태가 무기계약직에 불과하다. 대부분 노동조합도 없이 개별적으로 가혹한 노동환경에 맞닥뜨려져 있다. 다른 쪽은 정규직이 다수이며, 오랜 역사를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해온 산별 조직 형태의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다. 언뜻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넓은 의미의 ‘돌봄’노동에 속한다는 점이다. 야간 혹은 새벽처럼 비일상적 시간대에 행해지는 높은 노동강도, 제대로 쉴 수 없는 환경, 기여하는 노동의 가치에 걸맞지 않은 낮은 임금과 처우, 다른 산업과는 달리 여성노동자가 다수인 점 등의 유사점도 공유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보수 가정 내 돌봄노동을 하게 되면 시장소득을 얻을 수 없게 되거나 유급노동에 종사한다 해도 그 소득이 감소한다. 가정에서의 돌봄노동을 서구 여성 경제학자들이 “강요된 이타주의”라고 칭하는 이유이다. 유급 돌봄노동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기꺼이 하는 평범한 일의 연장선이라는 관점에서 그 가치가 쉽게 평가절하된다. 임금이 낮을수록 덜 이타적인 사람들을 이런 직업으로부터 배제하고 가장 이타적인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돌봄노동은 그 특성상 지불능력이 없거나 약한 어린아이, 노인, 환자 등을 주 고객으로 행해지며, 제조업처럼 기술의 발전에 따른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도 어렵다. 어린아이를 훌륭히 키우고 환자를 죽음에서 구해내어 그들이 나중에 사회에 크게 기여한다 해도 그 엄청난 생산성 효과를 소급해서 보상받을 수도 없다. 주목할 점은 유급 돌봄노동의 임금 불이익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을수록, 단체교섭 구조가 분권화되어 있을수록 임금 불이익의 수준이 높았다.

돌봄을 돌봐야 할 이유는 바로 이 문제가 우리 사회 노동, 복지, 저성장 문제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하지만 돌봄서비스 부문에서는 더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며 또한 그러한 일자리 창출로 모든 국민의 복지와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돌봄은 또한 대표적인 저임금 부문으로 성장에 필요한 유효수요 창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니 환경미화원을 직고용 정규직화하고 처우를 정상화하자. 더 나아가 다른 돌봄서비스의 경우에도 공공 부문에서부터 무분별한 민간위탁을 제어하여 현재처럼 재정 지원과 서비스 제공 주체가 분리된 구조를 통합해야 한다. 정부가 모범을 보여야 사회에 만연한 중층적 고용구조 개선이 가능하다. 원하청 관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노동자가 수수료, 알선료, 소개료 등을 과다 부담하는 다단계구조가 양극화 확대와 빈곤노동자 양산의 주범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건의료노조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파업 없이 코로나 시대 국민의 돌봄 받을 권리와 돌봄 할 권리를 보장하자. 돌봄을 돌봐야 할 이유는 많지만, 그렇게 할 힘을 가진 주체는 국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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