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얼마 전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급증과 자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금융불균형을 우려하여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나쁘고 재정확장도 제한적인 현실에서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해서는 우려할 만도 하다.
세계적으로 볼 때 또다른 중앙은행의 고민은 역시 불평등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 자산가격이 급등하고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비판이 높으며 팬데믹 이후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목표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고용이지만 최근에는 중앙은행가들도 불평등을 언급하는 빈도가 크게 높아졌다.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최근 완화적 통화정책이 불평등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관해 논의되었다고 한다.
통화정책이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은 복잡하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은 고용을 증가시켜 저소득층의 노동소득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자산가격을 상승시켜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 수 있다. 그 밖에도 금리 변화와 인플레이션은 저축자와 차입자 사이, 그리고 보유한 자산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분배효과를 낸다.
여러 실증연구들은 확장적 통화정책이 불평등을 감소시킨다고 보고한다. 미국의 장기적인 자료를 검토한 한 연구에 따르면 금리인상의 충격이 저소득층의 노동소득을 줄여서 가구 소득과 지출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일자리 사정을 개선하여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는 완화적 통화정책이 도움된다는 것이다. 실제 1980년대 초 인플레를 억누르기 위한 미국의 금리인상은 심각한 불황과 실업을 유발하여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많은 이들은 고금리 정책이 금융자본에 도움이 되고 산업 투자와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위기 이후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 반면 경기회복은 더뎌서 분노한 시민들이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다. 보수우파도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칼럼 제목은 ‘연준은 상위 1%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였다.
하지만 국제결제은행의 보고는 1980년대 이후 장기적인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변화에 미치는 통화정책의 영향은 제한적이며 기술변화나 세계화와 같은 요인들이 더 중요했다고 강조한다. 특히 완화적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2007년 이후 2019년까지 선진국들에서 상위 1%와 10%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높아지지 않았다. 소유가 집중된 주식과 달리 주택가격 상승으로부터는 중산층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득을 본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기관은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서는 소득재분배를 위한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각국의 상세한 자료를 사용한 실증연구들이 발전되고 있다. 2000년대 스웨덴의 행정자료를 사용한 연구는 금리인하가 하위 20% 저소득층의 노동소득을 높였고 동시에 상위 10%의 자본소득을 높였다고 보고한다. 그 결과 지니계수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상위소득 집중도는 높아졌다. 반면 덴마크의 세금자료를 사용한 연구는 금리인하가 모든 계층의 가처분소득을 높였지만, 사업소득과 자본소득을 중심으로 상위 1%의 소득을 더 많이 높였다고 보고한다. 또한 확장적 통화정책은 상위계층의 자산가치를 더 크게 높였다. 2018년 한국은행의 연구는 한국에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지니계수를 낮추었지만 그 효과가 미미하여 통화정책 충격이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은 작다고 보고한다.
더 많은 연구가 발전되어야 하겠지만, 통화정책과 불평등을 둘러싼 논란은 중앙은행이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무제한으로 돈을 풀어 위기에 빠진 경제를 구해냈지만 그 부작용으로 자산불평등이 심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펴면 많은 저소득층에 피해가 갈 것이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위기 이후 재정확장이 부족하여 통화정책이 거시경제 안정이라는 짐을 홀로 떠맡았다는 현실과 관련이 깊다. 그러고 보면 팬데믹 이후 적극적 재정정책의 귀환과 부자증세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불평등 개선을 위해서는 취약한 노동자들의 협상력 강화나 독점 억제와 같은 정책도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실패한다면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