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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피를 먹고 자란 군사법원 / 권혁철

등록 2021-08-30 16:19수정 2021-08-30 19:07

군인과 군무원 등이 범죄를 저지르면 1·2심은 무조건 군사재판을 받고 마지막에 대법원에 간다. 다른 나라 군인도 당연히 군사재판을 받을 것 같지만 평시에 군사법원을 운영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프랑스 등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군사법원이 없다. 군사적 긴장이 높은 대만, 터키도 몇년 전 군사법원을 없앴다.

미국은 세계 분쟁 지역 곳곳에 미군을 보낸다. 이 지역 미군이 범죄를 저지르면 본국으로 데려와 민간 법정에 세우기가 번거롭다. 미국은 분쟁 현지에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려고 군사재판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군은 평시에는 국내 주둔지에서 생활한다. 우리 군은 미군과 여건이 많이 다른데도, 군사재판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나라 군 사법제도가 해방 후 미 군정 때부터 미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군 사법제도란 말부터 미국의 ‘군사법 통일법전’(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에서 말하는 ‘Military Justice’를 번역했다고 한다. 1948년 8월4일 공포된 국방경비법은 형식과 내용에서 당시 미 육군 형법 등 미군 사법제도를 이어받았다. 이 법에 군사재판을 담당하는 군법회의가 등장한다.

국방경비법상 군법회의는 재판을 한번만 하는 단심제였다. 단심제 운영은 3심제를 보장한 헌법과 충돌해 위헌 논란이 불거졌다. 1962년 3심제 등을 규정한 군법회의법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 10·26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큰 시국사건이 군법회의에서 다뤄졌다. 당시 기억이 워낙 강렬해 군법회의가 아직 있는 줄 아는 사람이 꽤 있다.

1987년 6월 항쟁 뒤 9차 헌법 개정에 맞춰 그해 12월 군법회의법이 군사법원법으로 바뀌었다. 문민정부 출범 뒤인 1994년 민주화 열망이 높아져 군사법원법도 대폭 개정됐다. 이전까지 법관이 아닌 일반 장교인 지휘관(관할관)이 발부하던 구속영장을 군 판사가 발부하게 됐다. 1심 군사법원 재판부(합의부)는 군 판사 1명과 일반 장교(심판관) 2~4명으로 구성됐는데, 군 판사 2명과 일반 장교 1명으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 당시 군 내부에선 군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나왔다.

올해 공군과 해군에서 성폭력 피해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군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사회와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요구·권고했다.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심을 민간법원으로 넘기고, 성범죄 등은 1심부터 민간 수사기관이 수사하고 민간법원이 재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일부 사건을 민간법원으로 넘겼지만 1심 군사법원은 살아남았다.

지난 70여년간 군 사법제도의 역사를 보면, 군 특수성을 강조하다 일반 형사재판과 비슷하게 천천히 바뀌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군 내부의 자발적 노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화 열기, 억울한 피해자의 죽음에 군이 등 떠밀린 결과였다. 미국 독립을 이끈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군 사법제도 역시 피를 먹고 자라왔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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