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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영전 칼럼] 백신 십일조와 카인

등록 2021-08-31 14:44수정 2021-09-01 02:37

모든 국가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백신 양의 10분의 1을 국제사회에 내놓으라는 것이다.
백신을 독점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영향력하에 있는 나라들이다.
십일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지난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벌어진 백신 공급 확대 촉구 시위에서 참가자가 ‘우리는 백신을 원한다’고 쓴 손팻말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프리토리아/AFP 연합뉴스
지난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벌어진 백신 공급 확대 촉구 시위에서 참가자가 ‘우리는 백신을 원한다’고 쓴 손팻말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프리토리아/AFP 연합뉴스

신영전ㅣ한양대 의대 교수

8월28일 현재 전세계인 중 39.6%가 적어도 한번 코로나 백신을 맞았고 약 52억 도스의 백신이 사용되었다. 부자 나라들의 1회 이상 접종률은 아랍에미리트 85%, 영국 70%, 이스라엘 68%, 미국 61%, 일본 55%이고 한국도 56%를 기록하고 있다. 일부 대중매체는 이 접종률 순위를 올림픽 메달 순위인 양 보도하고 있지만, 백신을 한번이라도 맞은 인구 비율이 1.6%에 지나지 않는 빈곤국의 상황을 대비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자 나라들의 높은 접종률은 빈곤국 낮은 접종률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빈곤국 국민들은 한번의 백신 접종도 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세계보건기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은 자국민에 대한 추가 접종을 시작하고 있다. 이쯤에서 한번쯤 물어볼 만하다. “그래서 행복한가?”

작금의 코로나 백신 불평등은 단지 인도주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부자 나라의 백신 독점 속에서 개인, 종교 집단, 국가, 국제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랑, 헌신, 인류애, 국제 연대 등과 같은 기존 도덕규범의 붕괴이다. 또한 어리석음의 확인이다. 빈곤국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백신 효과를 무력화하는 변종 바이러스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0년 9월에 한국이 참여한 코백스 퍼실리티는 모든 국가에 충분하고 공정한 백신 배분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구매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나라 국민 20%의 백신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20% 접종만으로는 실효성이 적고 이마저 백신 조달의 어려움으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그러면 어떡할 것인가? “똑같이 나누어 쓰자”는 말로 모든 이들에게 성인 수준의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현실론만큼이나 무책임하다. 그렇다고 위기에 작동하지 않는 규범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 인류는 시급히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인류 생존을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과제다.

이쯤에서 제안하는 것이 ‘10분의 1 규칙’이다. 간단히 말해 모든 국가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백신 양의 10분의 1을 국제사회에 내놓으라는 것이다. 50억 도스의 10분의 1인 5억개의 백신은 빈곤국 접종률을 다른 국가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 부자 나라는 10분의 1만큼 접종 속도가 떨어지겠지만, 그 대신 인간의 품위와 바이러스 변종 출현 억제라는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백신을 독점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영향력하에 있는 나라들이다. 십일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십일조는 종종 부자 교회의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하지만, 소득의 10분의 1을 신께 바치고 그것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 전통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역에 나오는 “씨과일은 먹지 않고 땅에 심는다”는 ‘석과불식’을 신영복 선생은 절망을 희망으로 만드는 보석 같은 금언이라 했다. 10분의 1의 나눔, 여기서 ‘나눔’이란 남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고 내게도 소중한 것을 나누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마지막 품위요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다.

부자 나라들 그리고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10분의 1의 백신을 내놓을 수 있을까? “우리도 없는데!”를 외치는 이들의 돌팔매질 앞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말하는 글로벌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는 그런 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국민이 될 수 있을까? 이는 평생 위선으로 살아온 내게도 큰 도전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2차 접종을 망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급박하니 우선 기독교도와 유대교도에게 당신 신의 말을 전한다.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라기 3장) 예수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외면한 채 형식에만 치중한 십일조를 책망했다 한다. 그러나 그가 지금 이 땅에 온다면 “어차피 사랑도 없고 위선적일 거라면 부자 교회 말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해 십일조라도 내라”고 하실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종교라 자랑하던 이들이 앞장서라.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들의 천국’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천국은 당신들의 것이 아니라 백신 한번 못 맞고 죽어간 이들의 것일 테니. 또 언젠가 이 코로나 광풍이 가라앉는 날, 하늘에서 천둥 같은 목소리도 들려올 것이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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