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1915~2008)는 정원을 가꾸며 자연주의적인 삶을 평생 산 ‘타샤 할머니’로도 유명하다. 다큐멘터리 <타샤 튜더>의 스틸컷
김은형ㅣ문화기획에디터
사촌동생이 인스타그램에 꽃 사진을 올려 안부인사차 “예쁘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이렇게 답글이 달렸다. “언니도 늙었네, 늙었어.” 이걸 확 그냥!!
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꽃을 싫어한 적은 없지만 꽃을 보며 감탄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러다가 나도 추억의 여고동창 기념사진처럼 얼굴에 꽃받침을 하고 사진을 찍게 되는 건 아닐까.
몇달 전 이사를 하면서 플랜테리어에 도전했다. 유행이라고 해서 해보기로 했는데, 이건 내가 기대했던 집꾸미기가 아니었다. 집안 이곳저곳을 장식하기 위해 구비한 크고 작은 화분들이 며칠 만에 인테리어와 무관한 자리로 옮겨졌다.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거실과 발코니의 상석을 떡하니 차지했다. 절대 죽지 않는다는 다육식물도 순식간에 죽이던 내가 이파리들의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주먹만 한 화분에서 웅크리고 있던 잎과 가지들이 쑥쑥 자라는 건 어찌나 기특한지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본다. 그런 나를 보고 아이가 말한다. “엄마, 할머니 같아. 식물들한테 말도 하고.” 이걸 확 그냥!!
그럼에도 은근히 키우기 까다롭다는 유칼립투스 어린 가지를,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하며 키워낸 자신이 자랑스러워 어디 장한 식물 어머니상 같은 게 있으면 응모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회사에 오면 평균연령 오십이 넘는 팀원들끼리 밥 먹을 때 대화 레퍼토리 중 하나는 농사 이야기다. 팀원 7명 중 2명이 농업인이다. 월요일이면 잔뜩 그을린 얼굴에 흉터투성이 팔뚝으로 출근하는 걸 보면서 공직에 나가면 팔뚝 보여주는 것만으로 땅 투기 논란은 끝이라는 농담을 건네곤 한다.
방송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챙겨 보고, 주말 농사를 지으며 은퇴 후 귀농을 꿈꾸는 건 중년 아재들의 클리셰라고 생각했는데, 식물을 키우면서 나와 이들의 마음은 같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드닝 또는 텃밭 농사가 중장년의 전유물은 아니다. 또 귀농은 주거비 비싸고 번잡한 대도시를 벗어나 공기 좋은 곳에서 생활비도 줄일 수 있는 노후 준비라는 측면도 당연히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얼마 전 은퇴 후 귀농을 맘먹고 땅을 사서 일구며 겪는 현실을 쓴 선배의 칼럼(
[편집국에서] 은퇴 준비, 근심걱정 ‘리틀 포레스트’)은 아마추어 농사꾼의 시행착오와 고된 노동을 하소연하고 있지만 도무지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뚝뚝 배어 나온다. “양배추를 심다가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 죽음은 생각하지 않고 마무리 짓지 못한 정원을 더 생각하면서”라고 한 몽테뉴의 말은 죽음을 건너뛰는 삶(생명)의 이어짐, 즉 생산성을 향한 인간의 열망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러니 살인이 가지치기보다 쉬웠던 비토 콜레오네(<대부>)조차 토마토밭을 가꾸다가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겠지.
스스로 열정적인 원예가였던 정신과 의사가 쓴 <정원의 쓸모>(수 스튜어트스미스 지음)에는 좀 더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정원은 우리에게 순환적 서사도 준다. 계절이 돌아오면 우리는 귀환 감각을 느낀다.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다. 계절적 시간의 구조에는 위안이 있다. 친절하게 배움도 허락한다. 두번째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무언가 실패해도, 내년 이 시기에 다시 시도할 수 있다.”
농경사회를 벗어난 현대인의 시간 감각은 선형적이다. 성장하면 상급학교로 올라가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취업을 하고, 직장에서는 승진하고, 더 큰 성공을 위해 올라가고 올라가고…. 위로 올라가던 인생 곡선은 중년 이후 폭락장의 주가지표처럼 뚝 꺾여버린다. 환경적으로도 육체와 정신적으로도 급전직하로 달려가는 이 선형적 시간을 자연은 순환의 구조로 바꿔놓는다. 사회적 시간은 ‘상황 종료’를 울렸더라도 텃밭에는 미래가 있다. 비록 올해 양배추 수확은 망해도 내년에 다시 양배추씨를 뿌릴 수 있다. 헛된 기대가 아니라 실제로 돌아오는 봄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좌표의 0, 삶의 진짜 상황 종료에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가꾸면서 비 오면 비 와서 걱정(“더 자라기 전에 상추 뽑아야 하는데”), 안 오면 안 와서 걱정(“상추 시들겠네”)인 언니를 보면서 ‘왜 저런 사서 고생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2박3일 여행 가는데도 식물들에 마음이 쓰이는 걸 보니 나도 조만간 본격적으로 ‘자연인’ 대열에 줄을 서게 되는 건 아닐까 궁금해진다. 우리 팀 농업인들을 비롯해 회사 전체에 늘고 있는 농부들의 텃밭 사진과 미래 구상을 듣고 있노라면 팔랑귀가 호로록 펴진다.
어쩐지 뻔한 결말 같지만 자신은 뻔하지 않은 인생을 살겠다며 드글드글한 욕심을 끝내 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면서 차라리 뻔한 결말이 백배 낫다는 생각을,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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