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한 이슬람 무장 단체 대원들이 탈레반의 깃발을 흔들며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축하하고 있다. 이드리브/AP 연합뉴스
카불 철수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스스로 서고자 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 인계철선 같은 과거의 논리에 얽매이는 것이야말로 미군에게만 기대려 했던 아프간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다.그러나 이러한 우려, 비판, 주문은 다분히 황당하게 들린다. 우선 한국군을 아프간군과 비교하는 것은 모욕에 가깝다. 아프간 병력의 90% 이상이 문맹이고 30만 병력 중 6만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유령 군대였다. 각 종족과 부족에서 충원되어 이질적 오합지졸로 구성됐다는 근본적인 한계에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지휘통제체계가 겹쳐, 미국의 군수병참은 물론 공중 및 정찰감시 지원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깡통 군대이기도 했다. 세계 수위의 전투력과 겹겹이 쌓아올린 전력투자비를 자랑하는 70년 전통의 한국군을 아프간군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근 군내 성폭력 문제 등 몇몇 사례를 들어 군의 안보 의식과 전투력, 기강을 도맷금으로 폄훼하는 일은 더욱 수긍하기 어렵다. 도하 평화협약이 문제투성이인 것은 사실이다. 미국과 월맹 사이의 1973년 파리 평화협정도 그러했다.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는 아프간 정부를 사실상 배제한 채 탈레반과 무리한 협상을 전개했고, 아프간의 국내정치적 안정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 병력의 감축과 철수에 합의했다. 당시 협상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그러나 이를 문재인 정부의 평화구상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다. 종전선언이 미군 철수와 동맹 붕괴로 이어질 것처럼 주장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는 종전선언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는 상징적 제스처이자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종전선언이 한-미 동맹이나 주한미군의 위상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일은 북한의 비핵화와 동시적으로 연동돼 있다. 또한 한국 정부가 평화협상을 주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프간과는 크게 다르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갈수록 강화되는 북한의 핵 능력에 억지태세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 자산이다. 그러나 아프간의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동맹과 미군을 상수로 간주하는 타성에서 벗어나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전환을 통해 한국의 방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카불 철수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스스로 서고자 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 인계철선 같은 과거의 논리에 얽매이는 것이야말로 미군에만 기대려 했던 아프간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다. 이렇듯 카불의 교훈은 따로 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스스로 비하해 상대의 오판을 초래하거나 정파적 이익을 위해 객관적 현실을 왜곡하고 국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 말이다. 그리고 동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자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상식이다. 다만 눈앞의 이익 때문에 상식을 외면하는 이들이 있어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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