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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미친 짓’의 정의

등록 2021-09-05 15:50수정 2021-09-06 02:33

성연철ㅣ전국팀장

“미친 짓의 정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이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난 6월29일.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커질 때였다. 그즈음 하루 평균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490명가량이었다.

정부는 소비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개중에 무착륙 관광비행상품 개발이 들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정처 없이’ 국외 상공을 돌다 내리는 상품이었다. 해외여행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캐리어를 끌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기내식을 먹고, 면세품을 살 수 있는 ‘비행 소꿉놀이’를 하도록 터주겠다는 것이었다.

보복 소비란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누구를 상대로 무슨 복수를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어쩌면 ‘자해 소비’란 말이 더 어울리는, 기묘한 조합의 단어는 신문, 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오르내렸다. 코로나19가 없었던 아름다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어른거렸다.

그 무렵 인도에서는 심상찮은 조짐이 나타났다. 인도 정부가 델타 플러스 변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두 달 뒤. 변이 바이러스 위력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로다. 코로나19 ‘종식’을 외치던 호기는 연기처럼 사라졌고, 대신 ‘위드 코로나’ 하자는 타협안이 슬며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리가 회복할 일상이 보복 소비와 무착륙 관광비행 따위라면 암담한 일이다.

멈추지 않고 사고 먹고 마시려고, 자연을 들쑤셔 파내고, 뽑고, 길어 올리려다 세상 없던 바이러스와 질병을 얻은 일상으로 복귀하겠다는 것인지, 평생에 걸쳐 산을 옮겼다는 우공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수십년 만에 지구를 달궈 버린 일상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갈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나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경고는 같다. “이대로라면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이상 올라 30년 정도 뒤엔 문명이 붕괴할 것이다.” 1만8천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지구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고작’ 6도 낮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1.5도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익숙한 ‘일상을 회복’하면 일상 자체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늘 하던 대로 돌아간다면 지구는 ‘공유지의 비극’을 면하기 어렵다. 개인으로선 나무랄 데 없이 편리하고 합리적인 행동과 선택이지만 모두가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사회적인 재앙을 피할 수 없다. 훗날 역사는 “21세기 초 인류는 코로나19와 기후위기라는 명백한 지구의 경고를 겪고도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기록할지 모른다. 그때도 기록할 인류가 남아 있다면 말이다.

지난 1년 반 새. 지구는 경이를 보여줬다. 배와 비행기가 멈추자 베네치아와 히말라야에서는 각각 옥색 바다와 쪽빛 하늘이 드러났다. 한국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난해보다 7.3%가 줄었다. 불청객 미세먼지도 크게 줄었다. 분간 없이 오를 때 못 보던 꽃을 ‘멈출’ 때 본 셈이다.

다행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풀뿌리에서 꿈틀거린다. 충북 청주에서는 시민들이 100일간의 쓰레기 줄이기 실험을 했다. 제주에서는 ‘지구별 약수터, 플라스틱 없이 한 달 살기’ 운동이 벌어졌다. 서울 시민들은 재개발로 파괴한 만큼 녹지를 다시 만들고, 물티슈를 쓰지 말자고 제안한다. 지난해 동안 우리는 음식 배달앱 주문에 딸려 오는 6500만개의 일회용 수저 사용을 줄였다. 동네에는 투명 페트병을 따로 모으는 자루가 걸렸다. 재활용 숍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해양보호단체 미션블루 창립자인 실비아 얼은 환경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에서 말했다.

“인류 문명 변화에 변화를 가져오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것의 대부분은 누구 하나에서 시작해요. 누구 하나예요. 거울을 보고 잘 생각해서 행동에 나서세요.”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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