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강병철ㅣ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그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복 받은 삶이었다. 여한이 없었다. 단 하나, 아들 삼형제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걱정이었다. 아들들을 불러 모았다. 가느다란 막대기를 하나씩 주고 부러뜨려보라 했다. 막대기는 힘없이 꺾였다. 이번에는 여러개를 한데 묶어 주었다. 힘깨나 쓰는 녀석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꺾지 못했다.
대선 시즌이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한솥밥 먹던 이들끼리 체면도 품위도 버리고 물어뜯는 꼴이 역겹다. 그래도 고개를 돌릴 수는 없다. 정치만이 사회를 구조적, 근본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누구를 찍어야 할까? 헛된 약속이 될망정 공약을 볼 수밖에 없다. 그조차 쉽지 않다. 경제·교육·복지·안보 할 것 없이 좋은 말씀만 쏟아 내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에서 정말 그 길이 옳은지, 실현 가능성은 있는지 평범한 사람이 판단하기는 어렵다. 잘 모르는 문제에 관해 온갖 장광설을 듣다 보면 기가 질린다. 결국 첫인상에 기대어 선택하고 후회한다. 이럴 때는 시금석 전략이 유효하다. 자기가 확실히 아는 분야 한두 가지만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장애정책을 본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진일보한 장애정책을 내세운 분들이 있다. 그래도 장애인과 가족에게는 너무 부족하고, 너무 느리다. 공약을 지킨다 해도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구미 각국을 큰 격차로 좇아가는 수준이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장애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는 이유다. 비단 나뿐이랴. 며칠 전 자폐의 역사에 대해 온라인 강연을 했다. 설명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분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다들 답답한 것이다. 이렇게 답했다. “장애인이 소수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 수는 2020년 말 기준 263만3000명, 전체 인구의 5.1%다. 장애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등록기준 자체가 까다로운 편이라 실제 장애를 갖고 사는 사람은 훨씬 많다. 사실 장애 인구 비율은 포용적인 사회일수록 높다. 유엔(UN)은 전체 인구의 10%, 북미에서는 14%, 북유럽에서는 20%가 장애인이라고 본다. 여기에 가족, 친구, 지지 옹호자를 합치면 어떨까? 북미에서 장애 운동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몰라서 그렇지, 우리가 다수야!”
한국의 정치 구도에서 인구의 15% 정도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판도를 좌우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장애계 내부가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명분과 실리가 충돌하고, 우선순위가 각기 다르며, 선호하는 투쟁 방법도 다양하다. 요구 사항도 경제적 지원에 치우쳐 있다. 장애인과 가족 스스로 과학적 해법을 추구하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자폐스펙트럼장애’라면 조기진단 체계 구축, 진단 후 교육 프로그램 확립, 생애주기에 걸맞은 정밀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껏 확보한 경제적 지원조차 제대로 쓰이지 못한다. 쿠폰 몇 장 받아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사이비 프로그램을 전전하다 보면 아까운 시간은 다 흘러가고, 돈은 돈대로 깨지지 않던가. 의사나 정치인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느냐고? 천만의 말씀! 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장애에 관계없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앞당기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하지만 세상 어떤 일이 그렇지 않으랴.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손을 잡는 것, 어깨를 겯고 서로의 곁에 서는 것,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의 힘을 깨닫는 것. 장애인들이 손에 손을 잡으면 벽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너뜨릴 수 있다. 장애 부모로서 다른 부모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진보니 보수니, 전라도니 경상도니, 불교니 기독교니 따질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약자 편에 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