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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로나 시대 돌봄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며

등록 2021-09-06 18:47수정 2021-09-07 02:02

[세상읽기] 권김현영ㅣ여성학 연구자

국가 차원의 대규모 경제위기가 찾아온 이듬해에는 예외없이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떨어진다. 매년 소수점 이하 수준에서 아주 조금씩 올라간 수년간의 증가분이 한번에 날아간다. 1997년 구제금융 당시에 그랬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반복되었다. 코로나 시대도 경제위기 때와 같았다. 2008년 이후 한번도 감소한 적 없었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해 0.7%포인트 줄었다. 코로나 이후 여성 일자리는 39만5천명 줄었는데 같은 기간 남성보다 6만여명 많은 숫자이고, 경제활동 참여 인구에 비례한 감소율로 계산하면 여성 일자리 감소율은 더 가파르게 꺾인다. 유독 큰 타격을 입은 집단은 35~39살 여성으로, 2019년 61.2%에서 2020년 58.5%로 급감했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중반의 기혼여성들이 일자리를 많이 잃었다.

코로나 시대 여성 일자리의 위기는 특히 돌봄노동의 공사 영역 모두에서 도드라졌다. 재택근무와 비대면수업 준비는 고스란히 가내돌봄노동의 부담으로 이어졌고, 버티고 버티던 많은 여성들이 일시휴직을 떠밀리듯 결정했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키우고 있는 후배는 코로나 4단계로 2학기 수업도 비대면이 되자 할 수 없이 휴직을 결정했다. 보건의료영역의 돌봄노동자들은 감염병과 싸우면서 더 열악해진 노동환경에서 과잉업무에 시달렸다. 가정 안이든 밖이든 여성의 일은 줄기는커녕 늘었지만 경제활동참가율은 떨어지고 빈곤은 더 가속화되었다. 가내돌봄노동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 되었고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의 돌봄노동자들은 코로나 기간 동안 삶의 질이 급격히 나빠졌다. 보건의료노조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55.7%가 코로나로 근무여건이 악화되었다고 응답했다. 더 많이 일하지만 점점 더 보이지 않거나 계속 일하기 힘들 정도로 쥐어짜지는 상황이다. 여성의 돌봄노동에 사회 전체가 의존하면서도 여성의 경제적 위치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모순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지난 8월24일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에서는 여성 일자리 전망 및 정책 제언으로 유연근무제 도입과 여성 기능숙련인력 양성방안 등을 내놓았는데, 진단도 방향도 모두 문제다. 특히 여성들의 노동시장 이탈을 막기 위해 ‘고용유지'에 중점을 둔 경력단절 예방정책이 모색되어야 한다면서 사업장의 경직된 근로방식을 개편하고 ‘시간유연성이 확보되는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제안한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언뜻 보면 노동자는 시간유연성을 확보하고 사용자의 정규직 채용 부담도 줄어드는 방식 같지만, 시간유연성이 노동자 중심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으로 이용되면 노동자에게 유연근무제는 생활리듬을 파괴하는 불규칙 노동과 무임금 상시대기시간의 확대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또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 등의 근무유연성으로 인해 가중된 가내노동의 부담이 아주 쉽게 여성에게 전가되는 문제에 대한 대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콜센터와 병원 등 여성다수사업장은 3교대 근무와 불규칙한 노동시간으로 인한 만성피로로 노동력이 늘 부족한 상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 자체를 늘리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여성다수사업장인 병원에서는 산전산후휴가나 육아휴직 중인 노동자가 10%에 이르지만 인력확보를 하지 않고 업무과중을 상시적으로 방치한 결과 노동자들이 자구책으로 임신순번제 등을 도입했고 이는 직장내 괴롭힘 문제로 이어졌다. 상시결원 문제는 상시결원만큼의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해결된다. 일자리도 확보되고 직장내 괴롭힘 문제도 해결될 것이며 경력단절 걱정도 한결 덜 수 있다. 코로나19 대응 의료인력 기준 마련과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공공병원 확충, 환자비율 법제화, 교대근무제 개선, 교육 전담 간호사 제도 전면 확대, 지역 및 병원 규모별로 차등 적용되는 야간간호료의 형평성 제고 등 보건의료노조의 요구사항을 보면 여성 일자리 문제에 대한 주요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정부의 여성 일자리 대책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건의료노조 11개 지부의 파업을 지지한다.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데 누구보다도 애써온 우리의 영웅들이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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