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피의자 얼굴로 가득 찬 세상

등록 2021-09-08 18:31수정 2021-09-09 02:33

[세상읽기] 임재성 ㅣ 변호사·사회학자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수사 중이던 화성경찰서는 1990년 12월 9차 사건 용의자가 자백을 했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기자 수십명은 ‘고개 조금만 들어봐, 너무 숙였다’ ‘죽였어, 안 죽였어. 네 입으로 이야기해봐’라며 피의자를 다그쳤다. 19살 윤동일은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죽였는데요’라고 자백했다. 고문으로 만들어진 허위 자백이었다.

그의 자백은 객관적 증거와 일치하지 않았고, 다행히 체포 2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후 희귀암이 발병해 석방 7년 만에 사망했다. 고문 후유증이었다. 미궁의 연쇄살인 범죄자로 널리 알려져버린 상황 역시 그의 죽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봉준호는 화성 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 중 박해일이 분한 이의 모델이 윤동일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람들은 한번 얼굴이 공개된 이를 진범이라 믿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최근 감옥에서 자백하기 전까지, 고 윤동일은 죽어서도 고통받았다.

‘야만의 시대’가 끝나고 ‘자유의 시대’가 오는 듯했다. 1990년대까지도 피의자의 얼굴, 이름, 나이 심지어 집주소까지 공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법무부와 경찰청이 관행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적극 개입하며 변화를 지지했다.

명확히 할 부분이 있다. 2000년대 진전의 핵심은 ‘피의자’ 단계에서 신상공개를 근절했다는 것이다. 판결은커녕 검찰 기소조차 이루어지기도 전, 막 잡힌 수사 단계 피의자. 무죄추정 원칙이라는 헌법 원칙까지 갈 필요도 없다. 어떤 주체가 무슨 확신으로 그를 진범이라 단정할 수 있는가? 공개수배 단계도 아닌, 이미 체포되어 신병 확보가 완료된 피의자 얼굴이 공개될 때 발생하는 공익은 무엇인가?

알권리, 재범방지가 운운되지만, 범죄 사실이 아닌 범죄자 신상에서 알권리나 재범방지가 도출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몇개월 뒤에 최소한 1심 판결이라도 선고된 뒤 신상이 공개되는 것과 비교할 때, 피의자 단계에서 급박하게 공개가 이루어져야만 충족될 수 있는 알권리나 재범방지 효과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야만의 관행을 끊어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피의자 신상공개 금지를 흔든 것은 두 요인이었다. 먼저, 2000년대 후반 강력범죄 발생률이 계속 증가했다. 2004년 유영철, 2008년 조두순과 같은 개별 사건의 끔찍함 앞에서 강력범죄자들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자 그들이 이전과 다르게 보호받고 있는 거 아니냐는 여론도 커져갔다. 다른 요인은 보수언론의 상업주의였다. 2009년 강호순이 검거되자 ‘반인륜 범죄자들의 얼굴은 마땅히 공개’(조선일보) 또는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중앙일보) 등의 이유를 들며 두 신문이 강호순 얼굴을 공개해버렸다. 당시엔 긴장이 존재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는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켰다. 한겨레는 2010년 공적 인물이 아닌 이상 범죄 보도에 있어서 이름을 초과하는 정보까지는 보도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은 즉각적인 형벌처럼 작동하는 피의자 신상공개를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2010년 입법적 뒷받침이 이루어진다. 이후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2010년을 거쳐 현재까지 보수·진보언론 모두 법에 따라 공개된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신상을 여과 없이 보도하고 있다. 어느 정당,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피의자 신상공개 법률에 비판적 입장을 제기하는 쪽도 없다. 신상공개는 이제 정의 실현의 상징이 되었다.

오래된 논쟁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2010년 이후 10년 역코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평가는커녕 신상공개 제일주의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에서는 50억원 이상 횡령·배임죄를 공개 대상에 넣겠다는 법안을, 야당에서는 성범죄 피의자가 미성년이어도 공개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절차를 통해 신상이 공개된 자는 40여명이다. 그 공개가 과연 범죄를 줄였는지, 피해자 권리 회복에 도움이 되었는지 어떠한 실증적 검증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10년이 아닌 1년마다 40여명의 피의자 얼굴을 마주할지 모른다. 그 마주함이 마치 범죄를 응징하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해지고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낼 것이다. 범죄를 줄이고 막는 실질적 정책,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지난한 노력은 부차화될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