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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구조예측 기술이 풀어갈 미래

등록 2021-09-08 18:32수정 2021-09-09 02:33

[숨&결] 김준 ㅣ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코로나 바이러스 델타 변이처럼, 유전자 정보를 바꾸는 변이는 단백질을 바꾸기도 한다. 단백질은 유전자 정보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뀐 단백질은 구조나 기능도 함께 바뀔 수 있다. 백신의 효과를 떨어뜨리거나 더 빠르게 바이러스가 퍼지도록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새롭게 발견된 변이와 단백질 구조를 표적으로 백신과 약물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단백질 구조를 알아내는 일은 몇년씩 실험을 거쳐야 해 이런 일이 쉽지 않았지만,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가 빠르게 답을 내주고 있다. 복잡한 실험 없이도 컴퓨터만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세포라는 화학 공장을 작동시키는 도구다. 세포는 계속해서 단백질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20개가량의 아미노산이 다양하게 조합된 한 줄짜리 단백질이 탄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 실은 마치 20개짜리 알파벳으로 이뤄진 문자열처럼 저마다 고유한 아미노산 문장을 지니게 된다. 유전자에 변이가 생겼을 때 단백질도 바뀔 수 있는 이유는, 어떤 아미노산이 어떤 순서로 문장을 이뤄야 할지 정해주는 정보가 유전자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적절한 구조를 지녀야만 도구로 쓰일 수 있다. 단백질 실이 만들어지고 나면 설탕실이 솜사탕으로 덩어리지듯 단백질 실도 한 덩이로 구겨진다. 하나 다른 점은 단백질 실은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바탕으로 구겨진다는 것이다. 유전자 정보로부터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추정할 수 있으니, 유전자나 아미노산 서열 정보만 주어지면 그로부터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단백질 실은 얽히고설키는 과정에서 구조를 갖추고 표면에 손잡이를 만들어낸다. 이 손잡이는 다른 분자를 붙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단백질마다 아미노산 조성이 다르니 손잡이에 붙들릴 수 있는 분자도 다르다. 이런 다양성을 활용해 어떤 단백질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붙잡아 무력화시키고, 어떤 단백질은 성장 호르몬을 붙잡아 세포가 성장하도록 신호를 준다. 제대로 된 구조와 손잡이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단백질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요건인 것이다.

문제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유전자가 조금씩 다른 자연변이를 지닌다. 돌연변이가 생겨도 유전자는 망가진다. 이렇게 유전자 정보가 다르면 아미노산 문장도, 단백질 구조도 달라질 수 있다. 별 탈이 없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바뀐 구조 때문에 그 단백질을 표적으로 개발된 백신이나 약물의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고, 성장 호르몬이 없는데도 마치 성장 호르몬이 있는 것처럼 애먼 신호를 세포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단백질이 바뀌면서 유전병이 생기거나 암세포가 자랄 수 있게 되고, 삶의 질도 크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작동하는 단백질과 들러붙는 화학물질을 찾아내 그 단백질을 조절하는 약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구조 예측은 이런 신약 개발에 큰 힘을 줄 것이다. 유전자로부터 아미노산 조합을 예상할 수 있으니 그로부터 환자에게서 바뀐 단백질 구조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면 바뀐 단백질 손잡이에 잘 달라붙는 물질, 단백질 구조를 바꿔 오작동을 막아주는 물질을 쉽게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실험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줄여줘 신약 후보 물질을 좀 더 빠르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통계 기법과 빠른 연산을 감당해내는 기계 장치 덕분에 인류는 직관만으로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던 복잡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게 됐다. 기계는 우리가 제공한 문제와 답을 학습하고 새로운 문제에 대한 그럴듯한 답을 내준다. 사회문제에도 답을 줄지 모른다. 물론 정답이 명확한 단백질 구조 예측과 달리, 사회문제에는 훨씬 더 많은 요소가 개입되고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방식도 다양하다. 예컨대 더는 물류창고에서 일하다 죽지 않도록, 배달하다 죽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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