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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탈진실 시대의 ‘무지’와 ‘무시’

등록 2021-09-11 10:54수정 2021-09-11 15:54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강원도 춘천시 국민의힘 강원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 자리에서 “정치공작을 하려면 인터넷 매체에 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하라”고 말해 언론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드러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강원도 춘천시 국민의힘 강원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 자리에서 “정치공작을 하려면 인터넷 매체에 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하라”고 말해 언론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드러냈다. 공동취재사진

‘무지’와 ‘무시’는 획 하나만 다르지만, 뜻이 가깝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남’(타자)과 ‘님’의 관계처럼, 우연히 표기만 닮은 거라 여겨진다. 영어 ‘ignorance’(무지)와 ‘ignoring’(무시)을 보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표기만 닮은 게 아니다. 동사 ‘ignore’는 ‘무지하다’와 ‘무시하다’의 뜻을 모두 갖고 있다. ‘모르는 것’과 ‘알은체하지 않는 것’은 뿌리가 닿아 있다는 듯.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가 모른다고 할 때, 그것은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철학자 낸시 튜어나는 무지를 4개 영역으로 나눴다. ①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②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③ (특권을 가진) 타인의 바람 때문에 모르는 것, ④ 의도적인 무지(레테나 샬레츨 지음, 정영목 옮김, <알고 싶지 않은 마음>) 무지의 스펙트럼이 넓고, 어떤 무지는 의지적·비의지적 무시임을 짚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억압’을 회피해 ‘앎’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는 기제를 설명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무지와 무시는 ‘탈진실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쇳말이다.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의 서문에서 지은이는 “지식 기반 탈산업사회에서 (…)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무지의 권력이 놀랄 만큼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고 썼다. 진실에 대한 무시가 ‘탈진실’의 집단적 무지를 낳았고, 그 배경에 모종의 권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힌다.

탈진실 시대는 ‘가짜뉴스’의 시대이기도 하다.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에서 보듯, 가짜뉴스는 가짜여서 힘이 센 지경이 됐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상태의 뿌리는 대놓고 가짜뉴스를 ‘창작’하는 데 있지 않다. 사실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해 맥락을 왜곡하는 주류 매체의 행태가 매개된 정보에 대한 넌더리(무시)를 낳았고, 유튜버들의 매개되지 않은 정보에 대한 맹목(무지)을 배양했다. 가짜뉴스의 뿌리는 다름 아닌 주류 매체다.

“정치공작을 하려면 인터넷 매체에 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하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말은 그가 탈진실 시대의 ‘적자’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번거롭게 정치공작의 주체나 근거를 제시하느니, 제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무지의 힘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다수의 인터넷 매체는 그의 폄훼에 ‘의도적인 무지’를 보일 것이다. “부정식품 싸게 먹을 자유를 줘야 한다”는 말에 다수의 ‘없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아가, 주류 매체가 정치공작에 더 적합하다고 보는 그의 통찰은 매섭기까지 하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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