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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팬데믹 경제위기는 다른 위기와 다르다

등록 2021-09-14 18:36수정 2021-09-15 02:34

[세상읽기] 박복영|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지 20개월이 지났다. 팬데믹은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준 위기적 사건이었다. 코로나가 처음 세계로 확산하면서 경제 전체가 거의 정지되자, 위기 예측에 관해 여러 주장이 분출했다. V자형의 신속한 회복을 전망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L자형 장기침체를 전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전에도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같은 세계적 위기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번 위기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위기였다. 기존 위기는 모두 기업이나 금융기관, 혹은 정부 재정의 부실 같은 경제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번 위기는 감염병이라는 비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초유의 사태였기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었다. 한 세기 전 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 사례가 있지만, 전쟁의 경제적 충격이 워낙 커 팬데믹의 영향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제 팬데믹이 초래한 경제위기는 다른 위기와 어떻게 다른지 정리해볼 시간이 되었다. 많은 보건 전문가는 코로나 같은 감염병이 앞으로도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니 이런 정리는 그때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또 현재의 올바른 정책 선택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먼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는 다른 경제위기와 비교해 훨씬 예리한 V자 모양을 그렸다. 처음에는 극단적 봉쇄조치로 경제가 거의 정지 상태에 들어가 생산과 고용이 급전직하하였다. 하지만 봉쇄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의료시스템이 재정비되면서 이동 제한이 완화되자 경제는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코로나는 변이를 거듭하며 예상보다 길게 이어졌지만, 경제는 예상보다 빨리 회복한 것이다.

물론 고용은 생산이나 수출에 비해 회복이 훨씬 느렸다. 경제적 충격이 부문별로 매우 불균등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모든 위기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팬데믹 위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물리적 접촉에 의한 전염이라는 감염병의 특징 때문에 대면 업종과 비대면 업종의 차이가 극명하다. 한쪽의 위기가 다른 쪽에는 기회가 되고 있다. 따라서 팬데믹 위기에 대한 정책 처방은 다른 경제위기에 비해 더 선별적일 필요가 있다.

다른 위기와의 차이는 금융시장에서도 발견되었다. 다른 경제위기와 마찬가지로 팬데믹 직후에도 자금 순환에 장애가 발생하는 유동성 경색이 나타났지만, 이런 경색은 한두달 사이에 이내 사라졌다. 금융당국의 신속한 대응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부실기업 정리 같은 경제적 내상 치료의 후유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차이는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 대응의 적극성이다. 코로나로 심각한 경기침체의 조짐이 나타나자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규모 부양책을 신속하고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를 통해 어찌 보면 필요 이상으로 풍부한 유동성을 장기간 공급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확대 역시 전례 없이 과감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심각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만큼의 재정 확대를 하지 못했다. 2011년 유럽 위기 때 유럽연합(EU)은 재정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축을 선택했으며, 양적완화도 한참을 머뭇거린 뒤에야 했다. 모두 회복을 지연시킨 원인이 되었다.

과거와 달리 팬데믹 위기에는 과잉될 정도의 부양책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정책 여력이 그때보다 더 커서가 아니다. 그런 정책의 정치적 수용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위기 때는 위기 유발의 주체를 응징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서, 과감한 부양책이 의회 승인을 얻기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금융기관의 구제에 미국 공화당이 강력히 반발하였고, 2011년에는 그리스같이 재정을 방만하게 관리한 나라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독일인들의 정서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부양책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과감한 수요 확대는 바이러스가 유발한 일부 공급 장애와 결합하여, 이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있으며 그것은 생각보다 더 오래 지속될 조짐이다. 앞의 경제위기들 뒤에는 디플레이션이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 이처럼 팬데믹 위기는 여러 면에서 보통의 경제위기와 다르다. 그러니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선진국이라고 올바른 대응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창의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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