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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비릿한’ 세계관과 맞서려는 용기

등록 2021-09-16 04:59수정 2021-09-16 08:37

영화 <금성대전투> 포스터
영화 <금성대전투> 포스터

길윤형 ㅣ 국제부장

10여년 동안 매일같이 국제 뉴스를 접하며 깨닫게 된 ‘교훈’은 세계 모든 지역의 역사가 나름 다 곡절이 길고,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수천년 동안 인간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온 과정에서 필설로 옮기기 힘든 수많은 희비극이 이어졌을 것이니 자세한 사정을 모른 채 한두마디 보태다 보면, 누군가에겐 큰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미-중 전략 경쟁이 그렇고, 크고 작은 테러가 이어지는 중동 갈등이 그렇고, 한·중·일 3국이 부대껴온 동아시아사도 그렇다. 아프리카의 부족 간의 미시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도 끝도 없이 복잡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 도달한 나름의 결론은 ‘인생은 라쇼몽’이라는 것이다. <라쇼몽>은 한국에 아쿠타가와상으로 잘 알려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의 소설을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극화한 흑백 영화다. 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는 세상은 고정불변의 진실이 아닌 ‘각자의 진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도적은 자신이 정정당당하게 사무라이의 부인을 차지했다고 우기고, 부인은 여성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하며, 혼백으로 소환된 사무라이의 영혼은 마지막 자존심인 무사의 체통을 지키려 한다.

하물며 개인 사이에도 자신의 모든 실존을 걸고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 있게 마련인데, 국가와 국가의 정체성이 부딪히는 역사관의 영역에 이르면 화해와 타협의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고 만다. <조선일보>가 지난 7일 1면에서 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중국 영화 <금강천>(<1953 금성 대전투>)에 ‘15살 이상 관람가’ 등급을 부여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낸 뒤, 적잖은 논란이 이어졌다. 영화가 그리는 금성전투란 1953년 7월 휴전 회담 막바지 한·미 양군과 중공군이 벌인 ‘최후의 결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 회담에 훼방을 놓기 위해 1953년 6월18일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 등을 기습 석방하자 분노한 마오쩌둥은 보복을 지시했다. 조·중연합군 사령관인 펑더화이가 6월20일 “이승만의 한국군에 타격을 입히고 한국군 1만5000을 섬멸할 것”을 전하는 전문을 보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7월13일 오후 9시 시작된 이 전투로 한국은 그동안 점령하고 있던 중부 전선의 ‘금성 돌출부’를 잃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패배한 전투는 아니었다. 펑의 공언대로 국군의 공식 인명 피해는 1만명이 넘었지만, 1952년 4월 재창설된 제2군단은 끈질기게 저항하며 전선의 붕괴를 막고, 공세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 중공군 희생자는 국군의 두배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미 제8군 사령관이었던 맥스웰 테일러는 국군의 활약에 대해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다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대한민국 육군의 졸업식”이란 평가를 내렸다.

처절했던 지난 전투에 대해 중국인은 어떤 인식을 보여줄까. 나와는 전혀 다른 상대의 ‘거대한 세계관’을 접하게 될 때 우린 역겨움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비릿함’을 느끼게 된다. 이 묘한 충격이 상대에 대한 적의로 이어질지, 상호이해를 심화하는 첫발이 될지 미리 예견하긴 힘들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개봉되면 꼭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주변 반응은 달랐다. 관련 내용을 페이스북 담벼락에 옮겨놨더니 “국내 상영 금지해야 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이러니 얕보는 것이지요. 배알도 없는 민족이라고” 등의 댓글이 달렸다. 내가 틀렸는가 망연해하는 사이 수입사가 영화 개봉을 포기하며 논란은 일단락이 됐다.

문득 11년 전인 2010년 3·1절에 썼던 기사 한 토막이 떠올랐다. 당시 한·중·일 세 나라 청소년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를 비교 분석해 보여주며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편견 교육’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했다. 일본의 ‘우경화로 인한 역사 왜곡’과 ‘중국의 부상’이 본격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인지, 당시 한국 사회엔 한·중·일이 서로 협력해 열어가야 할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이 적잖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땐 ‘인생은 라쇼몽’이라는 냉소를 견뎌내고,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공통 인식을 찾으려 노력하는 ‘한줌의 무리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조금은 숨이 막힌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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