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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더 체어’와 대학원생의 학습권

등록 2021-09-29 18:25수정 2021-09-30 02:32

[숨&결] 강도희·최연진|대학원 석·박사 과정(국문학)

대학원에 가는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내가 속한 국문과만 해도 대개 학위 취득 후 연구자로 먹고살기 위해 대학원에 오지만, 비평이나 창작, 직업 전문성, 창업에 도움을 얻으려고 오는 이도 있다. 당연히 이 모든 동기의 바탕엔 ‘좋은 수업’이 있다. 한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앎의 행복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보기보다 대학원생은 썩 한가하지 않다. 대학원은 몇백년간 축적된 전문 지식을 혼자 소화할 때의 비효율과 불확실을 줄이고, 그 무엇이 됐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도움을 받는 곳이다. 학계 동향도 학교 밖에선 발 빠르게 따라잡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를 안고 대학(원)에 온 학생들의 수업권에 대한 요구는 종종 공부를 쉽게 하려는 게으른 주장이거나, 아니면 아예 없는 권리로 여겨진다. 서울대 국문과에선 2017년 표절 의혹이 제기된 교수가 2019년 해임 징계를 거부하고 법적 공방을 이어가면서 4년째 학생들의 수업 및 논문 지도에 차질을 빚고 있다.

“파티가 다 끝난 뒤에 온 기분이야.”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The Chair)는 삐걱대는 미국의 한 사립대학 영문과 학과장의 자리에 ‘마침내’ 앉게 된 한국계 여성 교수 유진 킴의 모험을 보여준다. 한국계 캐나다인 샌드라 오의 첫 단독 주연작이자, 한국 인문대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어 내 주변 반응도 뜨겁다. 시즌1(6부작)의 주요 질문은 ‘누가 수업을 할 것이냐’다.

학과장으로서 유진의 첫 과제는 인문대 학장의 반발을 무릅쓰고 30대 흑인 여성 교수 야즈의 종신임용(테뉴어)을 통과시키는 것, 둘째는 대학 재정을 축내는 ‘한물간’ 노교수들을 퇴임시키는 것이다. 그중엔 괴팍한 초서 연구자 조앤도 있다. 동료로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할머니지만, 그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지 않겠다며 학생들의 강의평가 읽기를 ‘격하게’ 거부한다. 이런 가운데 가장 가까운 교수 빌은 수업에서 파시즘을 설명하다 나치 경례를 한 것이 입길에 올라 정직되고, 대신 이사진은 예일대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강사로 섭외한다.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 수에 겁먹은 학교는 즉각적인 등록금 수입으로 이어지는 과대 포장 수업을 좋은 수업이라 여기고,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쉽게 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수업을 누가 들을 것인지 묻지 않은 채, 누가 할 것인지 공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콘텐츠를 좋아하는 요즘의 ‘블로거’ 학생들에게 먹힐 거라던 베스트셀러 작가는 기금을 낸 이사 개인의 아이돌일 뿐, 30년 전 쓴 박사 논문으로 수업 준비를 한다. 같은 시간 학생들은 야즈의 테뉴어를 지지하는 서명서를 학과장에게 전달하고, 그가 탈락하면 집단행동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한다. 야즈의 수업은 성이나 인종 잣대로 고전을 탈신화화하고 상호 참여가 이뤄져 늘 북적인다. 반대로 학생들은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젊은 여교수를 조교 취급하고, 토론 진행에 무능력한 교수의 강의는 듣지 않는다.

좋은 수업은 저서를 쓰는 것과는 달라, 교수자의 과거 지식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좋은 수업에선 그 순간 교수자, 학습자, 다른 학습자의 관심들이 마주친다. 이 작용은 언제든 꺼질 수 있다. 수업 주제에 학생 혹은 교수가 ‘노관심’이거나, 수강생이 너무 적어 새로운 만남이 없거나, 너무 많아 상호작용이 충분치 못한 채 학기가 끝나기도 한다. 과정 중 그런 수업을 최대한 피하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대학은 더 다양한 분야의 강사를 채용하고, 준비 시간을 포함해 교강사의 수업권을 충분히 보장해주어야 한다. 교수는 학생의 피드백을 듣고, 소화 가능한 학습량을 할당해야 한다. 빌처럼 수업에 한 시간씩 늦거나 아예 시대에 뒤처진 행동을 하고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억울해하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 학생은 교수 채용이나 수업 주제 등과 관련해 한 개인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는 절차나 기구를 통해 마땅한 학습권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지레 거리를 두려 하는 이들은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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