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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자영업자들의 오징어 게임

등록 2021-10-04 18:03수정 2021-10-05 02:40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 상가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 상가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이강국ㅣ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자동차회사 노동자였던 주인공은 구조조정을 당한 뒤 치킨집과 분식집을 하다 망해서 4억원의 빚을 지고 나락에 떨어진다.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을 따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게임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드라마에서 유출된 전화번호에는 자기도 빚이 많다며 게임에 참가하고 싶다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고 한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 고통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주인공과 비슷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실제로 전염병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급감한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위기에 빠져 있다. 취업자 5명 중 1명을 차지하는 그들이 바로 방역으로 가장 큰 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월세방을 빼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호프집 주인의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자영업자들의 빚도 크게 늘었다. 2021년 3월 말 자영업자 약 246만명이 약 832조원의 빚을 지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할 때 19%나 증가한 금액인데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보다 두배나 높았다. 특히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대출 증가율이 높았고 3개 이상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도 늘어났다. 앞으로 금리인상과 대출규제로 그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약 1년 동안 응답자의 81%는 부채가 평균 5천만원 넘게 증가했고, 약 45%가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은 방역과 경제성장에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큰 피해를 본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은 너무나 부족하다. 일본만 해도 긴급사태 선언 시기, 영업시간 제한과 주류판매금지 조치로 피해를 본 음식점 주인은 정부로부터 하루 4만엔에서 10만엔까지 지원금을 받았다. 한달이면 1천만원이 넘는 돈이다. 각 나라를 비교한 한 기사는 지난해 3월 이후 현재까지 미국·프랑스·일본의 식당은 1억~2억원에 이르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한국은 그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지난 6월 초까지 코로나19에 대응한 한국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4.5%로 선진국(평균 17.3%)에 견줘 현격히 적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성공적인 방역으로 경제에 미친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성공적인 방역이 자영업자들의 희생에 기초한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1차로 모든 국민을, 2~4차로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했지만 금액이 크지 않았다. 5차 재난지원금은 건강보험료에 기준하여 소득 상위 12%를 제외하고 지급했지만 선별기준에 관한 논란이 크다.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 보편적으로 신속히 지급하고 나중에 연말정산에서 선별적으로 환수하는 정책이 합리적이겠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한편 최근 경기도는 도의 예산 6380억원을 들여 이번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고소득층에게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25만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증세 없는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은 전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고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걷는 기본소득의 정신과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정부지출은 무엇보다 예산을 큰 폭으로 확대하고 자영업자 등 직접 피해를 본 이들한테 크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자영업자들에 대한 손실보상법이 통과되었다지만, 이와 관련한 내년 예산은 2조원이 되지 않으며 올해 추경을 합해도 약 3조원에 불과하다. 이는 5차 재난지원금 예산 11조원과 비교해서도 훨씬 작은 규모다. 어찌 보면 최근 자영업자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모두가 책임이 있는 사회적 타살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오징어 게임>은 남을 이겨야만 살아남는 게임과 지옥 같은 현실에서 잔인한 게임으로 내몰리는 절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어두운 현실을 그려냈다. 특히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나 취약한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게임 속에서도 사람들은 때로 서로를 도우며, 극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게임의 말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이 힘을 합쳐 현실의 오징어 게임을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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