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후반 인류 최대의 위협은 핵전쟁이었다. 핵전쟁 우려가 최고조로 치솟았던 1950~60년대 미국에선 핵공습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호소하는 신경증 증상자들이 크게 늘어 사회문제가 됐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페일 세이프> 같은 영화, 소설 등에도 이런 공포가 반영됐다. ‘오류 시 안전장치’를 뜻하는 ‘페일 세이프’는 미국 실수로 소련에 수소폭탄이 떨어지자,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보복 공격을 막기 위해 영부인이 방문 중인 뉴욕에 핵폭탄 투하를 명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1세기엔 기후위기가 인류 종말의 주요 요인으로 떠올랐다. 미국 원자력 과학자 그룹은 핵위협을 경고하기 위해 1947년부터 인류 종말 시점을 시계 분침으로 표현한 ‘운명의 날 시계’ 시간을 발표하고 있다. 냉전 해체로 핵 전면전 가능성이 준 뒤로는 기후위기와 팬데믹 등 파괴적 기술 요인도 시간 산정에 반영하고 있다. 20세기 중엔 미·소가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1953년이 ‘23시 58분’으로 종말까지 단 2분 남긴 가장 위험한 순간으로 기록됐다. 1991년 ‘23시 43분’으로 늦춰졌던 분침은 2018년 다시 한번 ‘23시 58분’으로 당겨지더니, 2020~21년 연속으로 ‘23시 58분 20초’를 기록하며 종말에 더 다가섰다. 세계 지도자들이 기후변화와 핵전쟁 위협에 대처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영화 <테넷>(2020년)은 기후위기로 멸종을 앞둔 후세 인류가 21세기 인류를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이 최초로 지구과학 분야에 돌아갔다.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산화탄소 증가가 기온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발견했고, 클라우스 하셀만 전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장은 기온 상승이 인간의 탄소 배출 때문임을 입증했다. 최종 수상은 불발됐지만, 노벨 평화상도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8)가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올해도 미국 텍사스 이상한파와 유럽 폭염, 중국 폭우 등이 지구를 덮쳤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아이피시시)는 8월9일 기후위기의 티핑포인트인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 시한을 애초 2052년께에서 2040년께로 앞당겨 예측했다. 노벨상이 기후위기에 대한 인류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촉매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