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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호의 저널리즘책무실] 저널리즘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등록 2021-10-13 17:28수정 2021-10-15 09:38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저널리즘의 출발선이다.
언론이 공익을 위해 좋은 결과를 알리고, 숨겨진 상황을 고발할 때에도 한쪽 측면을 실제보다 크게 부각시키는 건 아닌지 늘 조심해야 한다.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ho@hani.co.kr

‘블라인드 채용, 학벌·성별 차별 줄였다’. <한겨레> 9월10일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재단법인 ‘교육의 봄’이 주최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현황’ 포럼 내용을 전했다. 고용노동부 ‘공정채용정책 현장실태 조사 및 정책이슈 분석’ 보고서를 토대로, 공공기관 340곳 가운데 253곳의 4년간(2016~19년) 신규채용 현황 분석 결과, 2017년 하반기부터 실시된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에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 비율이 8%에서 5.3%로 낮아지고, 여성 채용은 34%에서 39%로, 비수도권 대학 출신은 43.7%에서 53.1%로 높아졌다고 한다.

기사에도 언급됐지만 2017년부터 지방대육성법에 따라 지방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에는 해당 지역 대학 출신을 일정 부분 이상 선발하는 ‘지역인재 할당제’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지역 이전 130개 공공기관의 경우, 2016년 13.3%이던 지역인재 채용이 2020년 28.6%로 늘었다.(인사혁신처, ‘공공부문 균형인사 연차 보고서’) 지방대 출신이 늘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뿐 아니라 수도권 대학 출신자 비중이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에 비수도권 대학 출신이 늘어난 데에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 할당제’ 중 어디가 더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의문이 든다.

또 면접에서 ‘성별’은 숨길 수 없다. 블라인드 채용 성별 효과는 서류 전형에만 적용돼 ‘출신 대학’에 비해 반감된다. 고용노동부의 ‘블라인드 채용 실태 연구보고서’(2020)를 보면, 253개 공공기관 채용인원 중 여성 비중은 2016년 34%, 2017년 상반기 38%다.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은 2017년 7월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제도 도입 이전에 이미 공공기관 여성 채용 비중이 늘어났고,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1%포인트 늘어났다.

블라인드 채용이 학벌과 성별 차별 해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할 것이다. 무엇보다 기사에서 언급하듯 인사 담당자들과 입사자들 모두 블라인드 채용에 강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원인은 복합적이다. 해당 기사는 별도 기획이 아니라 시민단체의 연구 성과를 전한 것이다. 일반적인 기사 제작 과정으로 보면, 기사 자체에 흠결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

애초 이날 기사는 현장에서는 보도자료 내용을 잘 전달하는 선에 맞춰졌다. 그러나 그동안 공공기관 채용 과정에서 빚어진 불법과 탈법을 꾸준히 고발해온 한겨레가 그 연장선상에서 채용 공정성 제고 결과를 재확인하는 것은 의미 있다고 판단해 편집국 논의 끝에 1면 머리기사로 정해졌다. 현장에서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평범한 발표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부각시키는 것은 ‘의제 설정’의 한 방법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그런 판단일수록 엄밀성은 더 요구된다.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22일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을 지시했고, 7월5일 고용노동부가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한겨레는 9월5일부터 강원랜드 부정채용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10월23일 공공기관 채용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이처럼 공공기관 채용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에 한겨레는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기사 말미에 ‘한겨레는 2017년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기획 기사에서 공공기관 채용과정의 차별 문제를 보도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같은 해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됐다’고 언급한 것은 이를 상기시킨 것이다.

또 하나 같은 날 2면 ‘성폭력 경력단절’ 기사의 부제가 ‘민간 조사 보니 피해자 72% 퇴사’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2016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1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응답자의 72%가 성희롱 피해 뒤 (6개월 안에) 퇴사했다는 것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 누리집을 보면, 해당 설문조사는 ‘서울여성노동자회에 상담을 의뢰한 성희롱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2014년 2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서울여성노동자회에 상담을 의뢰한 231명 가운데 조사에 응답한 103명’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에 상담을 의뢰한다면, 직장 내부나 공식라인을 통해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여성 노동자들이 많을 것이다. 설문조사 대상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급이 있었으면 상황 파악에 더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 공익을 위해 좋은 결과를 알리고, 숨겨진 상황을 고발할 때에도 한쪽 측면을 실제보다 크게 부각시키는 건 아닌지 늘 조심하고, 다각적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려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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