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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아이러니 / 정혁준

등록 2021-10-18 15:47수정 2021-10-19 02:33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456명 가운데 앞서가던 2명이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진다. 탈락은 죽음이었다. 생명을 담보로 한 게임인 줄 몰랐던 참가자들은 패닉에 빠진다. ‘로봇 술래’가 뒤돌아볼 때 몸을 움찔거린 사람은 날아든 총격에 피를 튀기며 쓰러진다. 어릴 적 친구와 놀던 추억의 게임은 공포로 바뀌고 살육으로 이어진다. 이 순간을 모니터로 보던 프론트맨은 위스키를 마시며 음악을 튼다. 재즈 피규어 세트 ‘리틀 재머’에서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사랑의 가사를 담은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다. 누군가는 살기 위한 게임을 치르고, 누군가는 죽음의 게임을 재즈와 함께 즐기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를 달로 보내줘요/ 저 별들 사이를 여행하게 해줘요/ 목성과 화성의 봄을 내게 보여줘요/ 달리 말하면, 내 손을 잡아주세요/ 달리 말하면, 내게 키스해주세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이 노래를 직접 선곡했고, 정재일 음악감독이 편곡했다. 노래는 뮤지컬 가수 신주원이 불렀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 노래 원곡을 불렀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리메이크다. 피아니스트 바트 하워드가 작곡해 뮤지컬 가수 케이 밸러드가 1954년에 발표한 노래가 원곡이다. 원래 노래명은 가사에 나오는 ‘달리 말하면’(In Other Words)이었는데, 2년 뒤 첫 줄 가사에서 따온 ‘플라이 미 투 더 문’으로 바뀌었다. 이 노래는 처음엔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본격화될 때인 1960년대 들어서면서 서서히 인기를 끌었다. 시나트라는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퀸시 존스와 재즈 피아니스트인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스윙 재즈로 리메이크해 1964년 발표했다. 조 하넬, 줄리 런던, 패티 페이지, 도리스 데이, 얼 그랜트 등 여러 가수도 이 노래를 불렀지만 시나트라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진입하기 직전에 사령선 안에서 이 노래를 틀었다고 한다.

감독은 왜 이 노래를 넣었을까? 처절한 죽음의 순간에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노래는 불협화음을 이루고 부조리하다. 돈 때문에 죽음을 게임처럼 즐기는 사람과 돈 때문에 그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일 듯하다.

정혁준 문화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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