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이안|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64년 만이라는 10월 한파 덕에, 그저 동네 편의점 골목길 단풍이나 곱게 물들기를 기다려 오던 은근한 마음에 쨍 하고 금이 갔다. 남은 가으내 애호박 몇개는 너끈히 더 키워 낼 수 있다며 애써 밭둑을 건너가던 호박덩굴은 밤새 내린 무서리에 검게 삶아진 채 축 늘어진 아침을 맞았다. 긴 여름을 나면서 기다려온 높고 맑고 고운 가을이 하루아침에 폭삭 옹색해지고 말았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아끼고 아껴 가며 먹고 입는 게 10월 11월 두 달의 빛이고 볕인데 말이다. 그래도 은행나무, 느티나무 같은 가로수들은 잎을 떨구지 않고 이 급랭의 날들을 살아남았으며 산기슭마다 긴급 구호소로 탈바꿈한 ‘들국화 기차역’이 노란 불빛을 밝히고 겨울로 가는 손님들을 불러들여 먹이고 입히느라 바쁘다.
“(온 세상 춥고 배고픈 이들은 모두 이리로 와요)/ (떠돌이가 먼저예요 주정뱅이가 먼저예요)/ (이리 와서 빛을 쬐고 배를 채워요)/ (비렁뱅이가 먼저예요 코흘리개가 먼저예요)/ (배고픈 이는 배를 채우고)/ (속병 난 이는 속을 달래요)/ (추운 이는 빛을 껴입고)/ (엄살쟁이는 꽃가루 외투를 덧입습니다)/ (서둘러요 겨울이 와요)/ (따뜻하고 배부른 이들도 오셔요 오셔요)/ (우리는 다 겨울 골짜기로 갑니다)/ (든든히 먹고 든든히 입고)/ (겨울행 기차를 기다려요)/ (기차가 곧 구절초역을 떠나 이리로 온대요)/ (이리 와서 빛을 쬐고 배를 채워요)”(이안, ‘들국화 기차역’ 전문)
이것을 “겨울 골짜기”를 향해 들어가는 모든 생명을 환대하고 응원하는 늦가을의 마음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64년 만의 10월 한파 덕에 겨우 떼어 보낸 지난여름 밤의 속삭임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이사 온 날 밤/ 잠자려고 누웠는데/ 모기가 날아와/ 앵앵거리며 물었다/ 뭐라고 물었느냐면/ 언제부터 여기 살았느냐고 물었다/ 오늘 이사 왔다고 했더니/ 어디 살다 왔냐며 또 물었다/ 아랫동네서 왔다고 하니/ 그 동네 모기들은 좀 어떠냐며 또 물었다/ 뭐라 대답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어디서 친구 모기들을 데리고 와서/ 다른 식구들은 어디 있느냐며 한꺼번에 물었다/ 처음 이사 오니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엄청 물었다”(김성민, ‘모기’ 전문)
모기 얘긴데 사람 얘기로 겹쳐 읽힌다. 익숙한 것과 헤어지고 낯선 동네로 이사 온 첫날 밤의 앵앵거리는 이물감을 이처럼 실감 나게 표현한 작품도 드물 게다. 단순한 궁금증의 표현이라고 하기엔 정도를 벗어난 듯한 물음이어서 ‘일진’들에게 ‘삥’을 뜯기는 이야기로 읽히기도 하고, 빚쟁이에게 감당키 어려운 독촉을 당하는 사나운 이야기로 겹쳐 읽히기도 한다. 어떻게 읽어도 집요하게 피가 빨리는 이야기. 지난여름에는 분명 이렇게 끔찍한 밤도 적잖았으니.
“우린 순식간에 만나고 이별했는데/ 서로 얼굴도 못 보고 헤어졌는데/ 참 오래도 기억한다/ 온몸으로 미친 듯이 기억한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만났던 그 기억/ 점점 더 붉어진다/ 점점 더 가려워진다”(우미옥, ‘모기 물린 자리’ 전문)
코로나 치하에서 2년을 살다 보니 그 전의 짧지 않았던 인연이 모두 “순식간에 만나고 이별”한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어제의 일이 백년 전 일인 것도 같고, 몇년 전 또는 십수년 전 일이 마치 방금 전 벌어진 일처럼 “온몸으로 미친 듯이” 내 앞에 떡 나타나기도 한다. 생존의 위기와 함께 정신과 감각의 혼동을 불러올 만큼 길고 어두운 코로나의 터널을 통과하는 지금, 지난여름의 모기 같은 이야기들은 이제 고만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나 주면 좋겠다. 너와의 일은 언제까지나 “온몸으로 미친 듯이 기억”할 테니.
“박수 칠 때 떠난다// 향 피우고 제사도 지내 준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고맙다 인간들아”(안상학, ‘모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