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가 2021년 10월21일 나로우주센터에서 이륙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뉴노멀-미래] 곽노필ㅣ콘텐츠기획팀 선임기자
누리호가 처음 우주로 날아간 10월은 세계 우주개발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달이다.
4일은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으로 우주시대를 연 날이다. 1주일 후인 10일은 1967년 우주 탐사·이용에 관한 ‘우주조약’이 발효된 날이다. 유엔은 두 날을 잇는 10월4~10일을 세계 우주주간으로 기념하고 있다. 올해 10월에도 새 우주 기록이 나왔다. 우주에서 처음으로 장편영화가 촬영됐고, 우주비행 최고령자 기록이 90살로 올라갔다. 한국도 10월의 우주캘린더에 ‘세계 일곱번째 1톤 이상 실용 위성급 발사국’이란 기록을 올릴 뻔했다. 마지막 순간에 좌절되고 말았지만 우주비행이라는 밥상을 차리는 법을 터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기술 이전이 금지된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이만큼 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격려받을 만하다. 다음번엔 궤도 배치라는 화룡점정의 순간을 기대한다.
우주 발사체는 우주개발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프라다. 발사체에 뭘 싣느냐에 따라 안보에서 경제, 환경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파괴와 번영이 공존하는 두 얼굴의 기술이다.
우주는 20세기 후반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의 새로운 지정학 도구로 떠올랐다. 우주의 지정학적 가치는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요즘 주요국들이 우주에 쏟는 열의가 이를 예고한다. 오바마의 민간항공우주경쟁촉진법(SPACE) 제정과 트럼프의 우주군 창설은 미국의 우주 패권을 더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상의 미-중 대립이 우주로 확장돼가는 건 그래서 당연한 귀결이다. 미 국가정보국이 ‘동급에 준하는 경쟁자’로 평가한 중국의 우주굴기는 말 그대로 ‘기세등등’이다. 미국도 아직 가보지 못한 달 뒷면에 탐사선을 보냈고, 달 암석 표본도 가져왔다. 첫 화성 탐사에서 궤도선과 착륙선, 탐사차를 동시에 보내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의 지피에스(GPS)에 대응한 위성항법 시스템 ‘베이더우’를 구축했고, 미국의 스타링크에 필적하는 저궤도 위성 인터넷망 구축도 시작했다. 우주로켓 발사 횟수에서도 미국과 선두를 다툰다. 내년에 완성되는 우주정거장 톈궁은 중국 우주굴기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미국이 주도한 현재의 국제우주정거장은 수년 내 운영 시한을 맞는다. 인류 우주활동의 전초기지가 톈궁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중이 미래의 우주지정학을 도모하는 최전선 가운데 하나가 달이다. 미국은 새로운 달 착륙 프로그램을 계기로 여러 나라와 ‘아르테미스 약정’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약정엔 단순히 달에 관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우주 물체 등록, 과학 정보 공유, 우주 인프라의 상호 운용, 유사시 지원 등 우주 활동 전반에 관한 협력 조항이 있다. 우주지정학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을 포함해 12개 나라가 약정에 서명했다. 중국은 처음부터 배제됐고, 러시아는 우주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다며 참여를 거절했다. 미국과 갈등 중인 두 나라가 의기투합했다. 달 궤도나 표면에 ‘국제 달 과학기지’를 만들기로 하고, 모든 나라에 문호를 열었다. 달이 우주 세력 겨루기의 중심 무대로 떠오른 셈이다. 아르테미스 약정 참여는 단순한 협력을 넘어 미국이 주도하는 우주질서에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리호의 성공은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고 한국에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더 첨예한 갈등과 위험에 노출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 4강국은 세계 우주 4강국이기도 하다. 한국의 우주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잡하게 엉킬 수 있다. 힘이 커지면 그에 따른 책임도 커진다. 누리호 이후 맞닥뜨릴 우주지정학의 풍파에도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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