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10월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태규ㅣ정치팀장
<나는 솔로>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청춘남녀들이 출연해 한적한 교외에서 합숙하며 반려자를 찾는 형식의 리얼 관찰 짝짓기 포맷이다. 합숙 둘째 날 이들은 자기소개를 하는데 ‘선호하는 이성상이 어떻게 되냐’는 단골 질문에 이런 답이 심심찮게 나온다.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실제로 ‘예쁜 말’의 위력을 증명한 사례가 있다. 한 남성 출연자는 ‘가족계획’ 질문에 “제가 선택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으면 안 낳아도 된다”고 답했다. ‘부인이 일을 하는 게 좋냐, 살림하는 게 좋냐’는 질문에는 “안 해도 상관없고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원해주고 싶다. ‘누구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사는 게 안타깝더라”고 말했다. 여성들은 “100점짜리 답변”이라며 감탄했다. 이 남성은 첫날 ‘첫인상 선택’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자기소개 뒤엔 7명의 여성 중 4명이 그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달달한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팍팍한 정치판으로 시야를 옮겨도 무엇을, 어떻게 말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한 ‘인기투표’다. 대통령이 되려면 4290만(2018년 지방선거 기준) 유권자의 마음을 말로 움직여 가장 많은 표를 얻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실언 릴레이’는 패착이다. 품격과 역사인식에 의심을 품게 했고, 상처 주는 말도 많았다. 정점을 찍었던 ‘전두환 옹호’ 발언은 문장 구조부터 고약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고,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도 했다. ‘전언’ 형식으로 나름의 조심성을 발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도 그걸 ‘남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향이 호남인 한 지인은 “전두환 잘했다는 미친 소리는 많이 들어서 상관없다. 왜 호남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는 식으로 걸고 들어가냐”며 분개했다. ‘전두환 찬양’을 넘어 이를 호남 여론으로 포장하려는 행태에 분노한 것이다.
‘전두환 망언’ 뒤 그동안 윤 전 총장 설화가 집대성된 내용이 인터넷상에 돌았고 홍준표 캠프는 이를 참고해 ‘윤석열 후보의 실언·망언 리스트(25건)’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25건 리스트에는 “(이명박·박근혜) 그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프다”는 의례적인 정치적 발언과 ‘전두환 망언’에 유감을 표명한 것까지도 무리하게 포함돼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제외하면 문제적 발언은 모두 19건이었다. 10월31일 기준 6.57일마다 한차례씩 설화가 발생했으니, ‘1일 1실언’까진 아니어도 ‘1주일 1실언’이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9일 “제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보다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 건지 먼저 생각해야 되는지를 (알았다.)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배려하고 존중하는 말하기’를 지금부터 해보겠다는 얘기다. 그의 ‘뒤늦은 깨달음’의 배경엔 여전히 탄탄한 지지율이 있다. 1주일에 한번꼴로 발생한 설화에도 지지율에 큰 타격이 없으니 “맞으면 맞을수록 단단해지고 더욱 강해진다”는 자신감은 여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저들의 공격거리가 될 수 있다”는 시각처럼 자신의 발언에 대한 비판을 모두 부당한 공세로 치부하고 다시 반격 모드로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솔로>에서 ‘예쁜 말’로 호평받았던 남성에게 호감을 보였던 한 여성은 “(방송) 하루 만에 나오는 답변이 아닌 거 같다”고 했다. 인격과 가치관이 투영되지 않은 ‘예쁜 말’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실언이 될 수 있다”(김태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는 분석을 참고하면, 윤 전 총장의 ‘문제적 발언’은 진심의 발현이다. ‘예쁘게 말하기’가 그에겐 자칫 진정성이 결여된 ‘로봇 연기’가 될 수 있다. 그의 선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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