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용서를 구하는 행위에 담긴 역설

등록 2021-10-31 18:06수정 2021-11-01 10:22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딸 소영씨와 아들 재헌씨를 위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딸 소영씨와 아들 재헌씨를 위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세상읽기] 김만권ㅣ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근대의 입구에서 마키아벨리의 위대한 전환은 정치란 우연성으로 가득한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데 있었다. 어떤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다는 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체를 세우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이들의 운명은 이 우연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는데 때로 이 가운데 행한 어떤 정치적 결정과 행동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듯 정치에 내재한 사건의 예측불가능성과 행동의 환원불가능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이론가였다. 아렌트는 이 두 측면을 다루는 인간의 도덕적 능력이 바로 ‘용서’와 ‘약속’이라 보았다. 아렌트에 따르면, 용서란 “모든 새로운 세대에 걸쳐 ‘죄’ 값을 치러야 하는 과거의 행위를 구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용서를 통해 과거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누군가는 과거라는 사슬에 묶여 영원한 희생자로 머물게 된다. 더불어 이 용서의 진실성은 그런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능력을 통해 보장되며 동시에 새로운 세대에겐 안정적 미래를 연다.

우리의 역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과오이며 범죄인 12·12 군사반란과 5·18 학살의 주범인 노태우씨가 세상을 떠났다. 동료 시민을 학살한 주범이라는 점에서 노태우씨는 업적의 공과 과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인물이다. 정치지도자에게 새로운 권력을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때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조언했던 마키아벨리조차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반하고, 처신이 신의가 없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그가 입은 국가장이란 영예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노태우씨를 달리 보는 한 대목은 5·18 주도세력 중 유언을 통해서나마 처음으로 용서를 구했다는 데 있다. 노태우씨는 ‘모든 일은 자신의 무한책임이며 5·18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너그러운 용서를 구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남겼는데, 맥락상 새로운 세대가 5·18이라는 역사적 범죄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인 듯하다. 이렇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행위에 내재한 역설 때문이다. 용서란, 무엇보다 용서를 구하는 자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희생자들이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를 구하는 자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행위가 용서다. 이렇듯 가해자들은 용서의 과정에서조차 주도권을 쥐고 있다. 용서를 구하는 자들이 없다면 희생자들과 함께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죄뿐이다. 하지만 이들을 단죄하는 일만으로 희생자들은 과거라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많은 경우 희생자들은 용서를 통해서만 과거라는 굴레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진다.

대다수 희생자들이 가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바라는 건 단죄를 넘어 용서하고픈 마음, 그 용서를 통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씨가 노태우씨를 조문하며 남긴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본인의 육성으로 그런(사과) 얘기를 들은 바는 없지만 광주 학살에 책임이 있는 전두환을 비롯한 어떤 사람도 지금까지 책임이나 사죄 표명이 없었음에도 노 전 대통령은 이에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오늘 오게 됐다. 전두환씨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광주 학살에 대한 사죄 표명을 하고 돌아가신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박남선씨는 간절하다고 말했다. 그 간절함이 노태우씨 본인의 육성으로는 들을 수 없었던 사과조차 받아들이게 되었던 이유는 아닐까?

누가 봐도 노태우씨는 너무 늦게 용서를 구했다. 늦은 만큼 희생자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더 어이없는 일은 그가 최초로 용서를 구했단 점이다. 희생자들은 간절한데 가해자들은 모두 ‘반성’이란 인간의 근본 능력을 상실한 듯 용서를 구하는 일에 침묵하고 있다. 왜 이토록 침묵하는 것일까? 혹 이들이야말로 아렌트가 적시한 ‘용서가 적용되지 않는’ ‘범죄의 극단’이자 ‘의도적인 악’(willed evil)의 일부이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인간의 선함을 믿고 싶은 우리의 소망은 헛된 것일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