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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차라리 국민지원금을 달라

등록 2021-11-03 18:26수정 2021-11-04 02:33

[편집국에서] 김회승|수석에디터 겸 경제에디터

지난달 초 상생 국민지원금 100만원을 받았다. 성인이 된 아이 둘 몫까지 지역화폐카드로 신청해 부부가 챙겼다. 먼저, 둘째가 몇년째 불편을 호소해온 삐걱거리는 의자를 새로 장만했다. 30만원 넘게 줬다. 잔 흠집이 많은 아내의 안경알도 갈았다. 10만원짜리 외식도 한번. 나머지는 동네 식품매장에서 썼다. 평소 잘 쳐다보지 않던 소꼬리, 왕새우도 사다 해먹었다. 한달여 기간에 네댓번 장보기를 했더니 지원금 카드는 바닥이 났다. 알뜰살뜰 잘 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민지원금을 또 주자고 한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히자, 중앙선대위 첫 회의에서 “적극 추진해주길 부탁한다”고 거듭 요청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마이웨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런데 김부겸 총리의 말이 영 걸린다. 그는 국민지원금을 줄 재정 여력이 없다면서 “1년 반 이상 피해가 누적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 손실보상법으로 도와드릴 수 없는 분들이 너무 많다. 정부로서는 이분들을 어떻게 돕느냐가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인데, 참 뻔뻔스럽다. 지금의 껍데기 손실보상법을 만든 게 바로 정부 아닌가?

소상공인 손실보상금은 지난주부터 신청과 지급이 시작됐다. 정부가 코로나 방역 조처로 영업에 차질이 생긴 이들한테 법으로 보상하는 나라는 우리가 처음이라며 자화자찬한 그 제도다. 실상을 보자. 실제 보상 대상은 80만곳으로 전체 자영업자의 15%에 불과하다. 집합 금지·제한 업종이 아니면 안 된다. 사적모임 제한으로 인한 피해는 대상이 아니다. 결혼·여행·숙박·전시·실외체육시설 등이 다 빠졌다.

보상금 규모도 절반 이상이 100만원 이하다. 자영업자들은 이런 푼돈 말고 차라리 목돈 대출을 받게 해달라고 하소연한다. 코로나 피해 계층을 넓고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억지춘향처럼 찔끔 재원을 마련해놓고 사각지대가 많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코로나 재정 부족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올해 엄청난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 말로는 확장재정을 한다면서 사실상 축소재정을 한 셈이요, 코로나 위기에 대응할 재정 여력을 스스로 줄인 꼴이 됐다. 덕분에 재정수지 적자 폭과 국가부채비율은 소폭 감소했다. 주요국이 코로나 위기 대응으로 막대한 채무와 적자를 감수하고 있는 마당에 민망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한두푼도 아니고 세수 추계 오차가 무려 40조원, 오차율이 14%에 이른다. ‘재정 참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홍남기 부총리의 “송구하다” 한마디로 퉁칠 일이 아니다. 감사원 감사로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다. 수많은 골목 사장님들도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러나 체력이 바닥이다. 현재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8월 말 기준)은 988조원이다. 코로나 이전(2019년 12월)보다 173조원, 21.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반 가계대출 증가율(13.1%)의 1.6배다. 대출의 질도 나쁘다. 올해 들어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율은 은행권에선 줄고 비은행권에서 가파르게 늘었다. 고금리 빚더미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것이다. 이젠 영업 금지·제한이 대거 풀렸으니 정부가 손실보상을 할 일도 없다. 바닥난 체력으로 다시 각자도생에 나서야 한다.

물론 망할 가게는 망하는 게 순리다. 실제로 국내 자영업 비중은 꾸준히 줄어왔다. 정부가 추계하는 자영업 비중은 1993년 27.3%에서 2019년 20.6%로 감소했다. 다른 나라보다 감소 속도도 빠른 편이다. 하지만 주변에선 여전히 치킨집 하다 고깃집 하고, 다시 술집을 연다. 이재명 후보는 불나방처럼 개미지옥으로 몰려든다고 하지만, 생계를 이어갈 마땅한 시장 일자리를 찾지 못하니 자발적 퇴장이 쉽지 않다.

자영업은 사업체인 동시에 곧 사람이다. 우리 경제의 실핏줄인 동시에 내 이웃이다. 사업체는 망해도 이웃의 삶이 망가져선 안 된다. 정부가 초과 세수를 이용해 손실보상 예산을 1조4천억원 안팎 더 늘릴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국민지원금을 주라. 국민이 정부보다 훨씬 더 두텁고 넓게, 알뜰살뜰 동네 이웃 사장님들을 도울 수 있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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