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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NDC 폐기’는 기후공약이 아니다

등록 2021-11-04 18:15수정 2021-11-05 02:33

[세상읽기] 서복경|더가능연구소 대표

며칠 전 연이틀에 걸쳐 대한민국 서울과 영국 글래스고에서 두 사건이 있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한국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엔디시)를 상향해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 전날인 10월31일 홍준표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전면 폐기하고, 원전과 수소로 탄소제로에 도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서로 비슷한 정책으로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는 세계 기후위기 대응체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포괄적 기후위기 정책인 반면, 후자는 ‘원자력과 수소’라는 에너지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준표 후보는, 혹은 대한민국 제1야당이자 다음 대선 이후 집권당이 될 지도 모를 국민의힘은 기후 공약이 뭔가?

동의하지 않지만, 홍준표 후보나 국민의힘이 ‘원자력에너지를 활용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을 가질 수는 있다. 일부 기업이나 원자력 업계의 강력한 이해관계가 있고, 원자력발전이 여전히 ‘싸고 안전한 에너지’라 믿는 시민들이 있으며, 그 의견도 정치적으로 대표될 권리가 있다. 앞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현 정부가 만든 엔디시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시민들이 있고, 국민의힘이나 홍준표 후보가 이를 대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데 있다. ‘신한울 3·4호기 등 원래 계획된 원전 건설을 즉시 재개하고, 신규 원전을 조속히 착공해 원전 비중을 현재 29%에서 50%로 높이는’(10월31일 홍준표 후보) 것 외에, 어떤 방법으로 파리협정이 부과하는 국제적 의무를 달성하겠다는 것일까? 글래스고에서 문 대통령은 ‘석탄발전 비중을 2018년 대비 절반 정도로 축소하고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공표했다. 부문별 2030년 배출량 감축률 목표치는 산업 14.5%, 건물 32.8%, 수송 37.8%, 농축수산 27.1%, 폐기물 46.8% 등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나 홍 후보는 현 정부의 목표를 폐기한 후에,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엔디시를 어떻게 새로 설정하겠다는 것일까?

2018년 제2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파리협정 세부 이행지침에 따르면, 협정을 체결한 모든 국가는 2020년까지,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참조연도, 기준연도, 참조기간, 이행기간, 배출량 산정에 사용된 방법, 부문별 목표 및 방법 등을 명기해서 제출해야 할 의무를 진다. 우리나라도 2020년 12월, 양식에 맞추어 엔디시를 제출했다. 하지만 2021년 1월 출범한 미국 바이든 정부나 유럽연합 등으로부터 선진국 지위에 걸맞지 않은, 많이 부족한 엔디시라는 압력을 받았고, 결국 2021년 4월 상향된 엔디시 제출을 다시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일 글래스고 공표 버전의 엔디시 상향안이 나온 것이다.

또 2018년 대비 40% 감축안은 2021년 8월31일 국회를 통과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의 범위 안에 있다. 법은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도록 하고 있고, 정부는 40%를 목표로 선택한 것이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안을 심의할 때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유럽연합(EU)은 1990년 대비 55% 이상, 미국은 2005년 대비 50% 이상 감축 목표를 세웠는데 민주당은 겨우 35%를 감축하겠다고 한다’(김웅 의원, 2021년 8월 페이스북 게시글)며 법안심의를 거부한 바 있었다.

그러니 국민의힘은 2018년 대비 최소한 35%는 넘는 감축목표를 내놓아야 하고, 파리협정 이행지침에 따라 ‘원전 확대’만이 아니라 이동수단, 건축물, 농업 등 부문별 목표와 달성 방법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기후 공약이 되는 것이다. 홍 후보는 ‘엔디시 폐기’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아마 ‘문재인 정부의 엔디시 안 폐기’일 것이다. 설마 엔디시를 한국 정부 독자적으로 폐기할 수 있다고 생각이야 했겠는가. 그러니 얼른 국민의힘 후보들도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제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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