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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종내 차별주의자’인 어느 반려인 / 안영춘

등록 2021-11-07 14:04수정 2021-11-08 02:33

‘쾌고감수능력’(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동물권 운동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영어로는 ‘sentience’인데, 일반적으로 감각성이나 지각력을 가리키는 이 말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 이가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다. 싱어는 <동물 해방>(1975)에서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동물종에는 공리주의의 원리인 ‘이익평등고려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리주의에서 고통은 그 자체로 이익에 반하는 것이므로, 인간과 동물 할 것 없이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개념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근대 휴머니즘이 정작 비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종 차별주의’나 다름없음을 일깨운다. 인간의 동물 단백질에 대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공장식 축산이 만연하고, 지적 호기심이나 질병 극복을 위해 동물 실험이 일삼아 자행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한갓 동정심이 아닌 명징한 논리로 윤리적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쾌고감수능력 이론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통’ 혹은 ‘고통 없음’이라는 이분법은 장애운동에서 싱어가 수용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장애 운동가이자 동물권 운동가인 수나우라 테일러는 <짐을 끄는 짐승들>(2020)에서 싱어가 장애를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인간의 기준으로 동물종들에 차별적 위계를 부여하고 있음을 그의 이론 내부를 헤집어 증명한다. 인간의 능력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측정해 동물권의 근거로 삼는 세태에서도 그의 그림자를 찾아낸다.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생물학자인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이라는 개념도 싱어의 한계를 보여준다. 반려종은 반려동물과 전혀 다르다. 생물학적 종을 가로질러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깊게 의존하는 관계를 가리키며, 땅 같은 비유기체까지 아우른다. 인간도 그 안에서 하나의 그물코일 뿐이다. 반려종은 인간중심주의나 종 차별주의를 철저히 해체해, 인간이 비인간과 맺을 수 있는 더 나은 관계에 풍부한 영감을 준다.

독창성만큼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저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자신의 선거 홍보물에 반려견을 등장시키면서도 ‘식용 개’의 필요성을 애써 인정하는 태도를 일러 ‘종내 차별주의’라 해야 할까. 그런 그에게 식용 개는 ‘부정식품’일까 아닐까.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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