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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경찰과 ‘인권’

등록 2021-11-08 19:33수정 2021-11-09 02:34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숨&결] 김원규ㅣ변호사·국가인권위 전 직원

경찰이 인권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수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수사본부가 신설되고 주민밀착형 경찰권 행사를 위해 자치경찰제가 도입되었다. 경찰청은 작년 6월10일 경찰관의 국민 인권보호 책임 등을 천명한 ‘경찰관 인권행동강령’을 선포하였다. 올 6월에는 ‘인권경찰 구현을 위한 개혁방안 대국민보고회’를 개최하여 경찰 내부에서 인권침해 감시자 역할을 할 인권정책관 신설과 피의자 등의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 인권보호수사준칙 제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혁방안을 발표하였다.

경찰의 이런 노력은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 절차에서 대폭 권한이 강화된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찰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 한편에 허전함이 가시지 않는 건 왜인가?

나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있을 때 두 개의 재심 무죄 사건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2001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해사건’에서 사법당국은 15살에 불과한 아동을 보호자나 변호인도 없는 상태에서 조사하여 얻어낸, 그것도 5번의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수시로 바뀐 자백을 사실상 유일한 증거로 하여 징역 10년형(살인죄)을 확정하였다. 경찰은 범행의 도구인 칼도 증거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의자 자백에 기대어 유죄 절차를 진행하였다.

2007년 ‘수원역 노숙소녀 살해사건’에서도 사법당국은 노숙인 2인의 자백만을 근거로 상해치사죄로 징역 5년을 확정하였다. 심지어 이 노숙인의 자백은 다른 사람을 사망한 사람으로 착오해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그것조차 범행의 주요 대목에서 수시로 바뀌었음에도 유죄의 증거로 채택되었다. 도심 거리에 촘촘히 설치되어 있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이들의 모습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무시되었다.

이 외에도 아동, 지적장애인, 노숙인과 같은 취약자들이 누명의 위험에 처했던 사건들이 적지 않다. 2007년 ‘수원역 영아 유기치사사건’에서는 경찰이 지적장애가 있는 노숙 소녀한테 아이 출산과 유기의 자백을 얻어냈으나, 다행히 노숙 소녀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석방되었다. 같은 해 ‘보령 여중생 폭행치사사건’에서는 경찰이 실종된 여동생 살해에 대한 고등학생 언니의 자백과 2명의 초등학생 동생의 범행 목격 진술을 확보한 상태에서 피해자가 살아 돌아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이 사건들은 나중에라도 누명이 벗겨졌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경찰이 어떤 방법으로든 방어력이 취약한 피의자의 자백을 확보하기만 하면 사실상 증거조사를 멈추고 유죄 절차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나는 위와 같은 잘못된 공권력 행사로 시민의 삶이 파괴된 사건이 드러났을 때 경찰을 포함한 사법기관의 자성의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경찰청 차원에서 억울한 범인을 만드는 수사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하여 재발방지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했다는 소식도 들은 바 없다. 2017년부터 2년 동안 활동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도 경찰의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8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해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권고하였지만 위 사건들에서 나타나는 자백 중심 수사의 문제점을 강조하지는 아니하였다.

위 사건들 중에는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주장된 사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도 있었다. 허위자백은 고문이나 가혹행위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고문이나 가혹행위 금지가 허위자백 방지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억울한 범인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런 행위의 금지만이 아니라 피의자 자백 확보에 집중되어 있는 수사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 경찰이 진행하고 있는 인권경찰로의 변신 노력이 성공하기 위한 최소조건은 자백 확보 중심 수사의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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