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황필규|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학생이 잡혀갔다. 담임 선생님은 여기저기 알아본 뒤 공감에 연락했고 그렇게 나는 그를 만났다. 장학금까지 받으며 잘 지내던 몽골 국적 미등록 고등학생 ㄱ, 그는 한국 학생들과 싸운 몽골 친구들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밤새 통역을 했다. 아침에 귀가하려 할 때 경찰은 확인해보니 체류 자격이 없다며 그를 출입국 당국의 구금시설로 보냈다. 경찰을 도왔을 뿐인데. 출입국 당국에 연락하고 필요한 법적 조치를 하려 했지만 학생은 몽골로 강제퇴거되었다. 선생님에게 이미 강제퇴거된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에게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가고 단체들의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의 뜻에 공감한 한 단체 활동가가 내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2년간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행정상 이의 제기, 국가인권위 진정, 유엔 진정, 기자회견, 국회 토론회, 법무부 관계자들과의 지난한 협의가 있었다. 학업 중인 외국인 초등학생, 중학생은 체류 자격이 없더라도 강제퇴거시키지 않는다는 지침은 고등학생까지 확대됐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ㄱ 학생은 한국 대학으로 유학을 올 수 있었다. 학생을 지켜주려는 선생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2012년 한 선생님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이 사건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주아동의 인권을 위한 네트워크의 출발점이 되었다.
영화를 공부하고자 관련 대학 입시에 합격했지만 체류 자격이 없는 신분 때문에 입학은커녕 강제퇴거의 위기에 몰려 있는 방글라데시 학생 ㄴ의 소식을 접했다. 알고 보니 그 몇년 전에 그 누나가 미등록인 상태에서 대학 입학이 가능한지를 물어와 어렵다는 답을 했던 적이 있었다. ㄴ을 돕고 있는 한 영화감독이 있었다. 여러 기회를 마련해주며 ㄴ이 영화인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왔을 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이나 체류 자격과 관련된 문제도 온갖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며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 감독의 뜻이 너무도 강해서였을까. 예상했던 장애물뿐만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걸림돌이 계속 등장하는데도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출입국 당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출국했고, 비자를 받고 다시 돌아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여전히 힘없는 이들과 관련된 삶의 현장을 누비는 감독과 몇년 만에 마주쳤다. 짧은 한두마디 대화를 하고 헤어졌지만 그는 늘 옆에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을 줬다.
서울 이태원에 있다는 한 한국인 중년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이지리아 친구의 자녀들을 도와줬으면 하는 전화였다. 체류 자격 없는 다섯 아이 모두 한국에서 태어난 이 가족의 첫째 아이 ㄷ이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고 있는데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현지 교육청과 출입국 당국의 무지에서 비롯된 문제였기에 관련 자료를 전달하고 서울교육청에서 연락을 하도록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가족과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혹은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태원 친구’는 그다음에는 초등학교에서 입학을 거부하고 있는 학생 ㄹ의 소식을 알려줘 교장을 접촉해 관련 규정을 설명하고 입학을 성사시켰다. 또 그다음에는 앞의 나이지리아 가족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처지에 있는 가족과 학생 ㅁ을 소개시켜줬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실제 구체적인 사건을 맡아 열심히 일한 다른 변호사나 활동가 덕분에 혹은 시대의 변화 덕분에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이태원 친구’의 진심 어린 관심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였다.
얼마 전 주말에 그 ‘이태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냥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법무부의 특별조치로 ㄷ과 ㅁ의 가족은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얻을 것 같고, 초등학교 입학에 어려움을 겪었던 ㄹ은 오래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정작 내가, 그리고 이 사회 전체가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데. ㄱ의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그냥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선생님은 그 사건 당시 사회에서 따뜻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 역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데.
사람 ‘곁’에 있으려 하는 이들이 있기에 조금은 살 만한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있기에 우리도 변하고 새로운 관계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곁’에 있는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