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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지는 누구의 것인가

등록 2021-11-15 15:40수정 2021-11-16 02:05

[세상읽기] 한승훈ㅣ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1770년대 조선의 어느 눈 오는 밤이었다. 이벽은 오늘날 경기도 광주와 여주의 경계 즈음에 있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스승 권철신과 동료인 이승훈, 정약용 형제 등이 산속 절에 모여 학문을 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에 합류하기 위해 길을 나선 참이었다. 길을 안내하는 승려들이 동행하고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맹수들을 막기 위한 꼬챙이 달린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동료들과 촛불을 켜고 열띤 토론을 했다. 이 공부 모임은 십여일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여했던 인물 가운데 상당수가 훗날 1801년 신유교옥의 와중에 ‘사악한 학문’인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혐의로 처형당하거나, 유배되거나, 심문 중에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천주교 쪽의 기록에 의하면 모임의 참여자들은 “하늘, 세상, 인생” 등의 문제를 탐구하면서 유교 문헌과 함께 청나라에서 들여온 서학서들을 검토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서양인 선교사들이 번역한 윤리서, 과학 서적, 교리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책들에 ‘진리’가 담겨 있음을 깨달은 일부 참여자들은 그때부터 기도, 묵상, 정기적인 금육(禁肉) 등을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강학회’가 있었던 장소는 경기도 광주시에 있었던 천진암과 여주시에 있었던 주어사 중 하나, 또는 둘 모두라 여겨진다. 두 사찰은 모두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천주교인들에게 협력한 벌로 폐찰되었다는 전승도 있다.

그러다 1960년대에 주어사와 천진암의 터가 확인된 이후 한국 천주교 일각에서는 이들 지역을 ‘성지’로 조성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의 시작은 이승훈이 세례를 받은 1784년으로 여겨져왔는데, 그걸 몇년이나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특히 천진암 터 일대의 성지화 작업은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2079년 한국 최대의 대성당 완공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주어사 터에 대해서도 천주교 성지화 움직임이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불교계의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천진암 성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불교 흔적 지우기’가 반복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주어사 터에 있던 유물인 해운당대사 의징의 비석이 석연치 않은 과정을 통해 절두산 순교성지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졌다. 현재 이 지역에서는 불교 쪽의 사찰 원형 복원 주장과 천주교 쪽의 성지화 시도가 충돌하고 있어 더 큰 갈등이 염려된다.

이것은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천주교 성지 조성 사업에서 유사한 형태로 일어나는 논란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서울 서소문성지는 천주교만이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식민지 독립운동 등 다양한 역사적 맥락이 관여되어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정 장소를 특권화하며 다른 공간보다 성스럽게 여기는 것은 종교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한국은 특정 제도종교가 지배적인 지역이 아니며, 여러 종교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전통은 성스러운 장소를 기념하거나, 조성하거나, 제도화하는 방식이 다르다. 게다가 하나의 장소를 여러 행위자가 동시에 성스럽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명찰이 있는 산에 개신교 기도원, 무속의 굿당이 공존하는 일은 대단히 흔하다. 계룡산과 같은 중요한 산에서는 산기슭 제단의 유교식 제사, 산속 절의 산신법회, 무당에 의한 산 위의 굿이 같은 날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는 종교와 관련된 유적이라고 하여 그곳을 특정 교단만의 배타적인 성지로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다. 천진암-주어사 강학회가 있었던 18세기 말에는 아직 한국 천주교도, 대한불교조계종도 없었다. 모인 사람들은 유자들이었고, 장소는 사찰이었으며, 읽은 것은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책들이었다. 따라서 그 터에 다시 절을 짓겠다거나, 그 흔적을 지우고 큰 성당을 짓겠다는 것은 오히려 장소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처사다. 제도종교의 틀을 넘어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불교 사찰에 모인 유자들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발견’한 기적과도 같은 사건을 기념하는데, 성당을 짓고 순례길을 꾸미는 등 틀에 박힌 성지 조성 형식을 반복한다는 것은 끔찍하게 진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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