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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암 극복, 돈이라는 걸림돌

등록 2021-11-17 18:07수정 2021-11-18 02:32

[숨&결] 김준|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사람은 어지간한 기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세포로 이뤄진 이 시스템은 평소에야 별 탈 없이 잘 굴러간다. 그렇지만 부품이 고장 날 수 있는 여느 기계처럼 세포도 고장 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오래되거나 손상을 입어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세포는 부품 교체하듯 제거되고, 고장 난 세포가 맡던 일은 새로 만들어진 멀쩡한 세포가 대신 맡는다. 알아서 고쳐지니 이만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몸은 완벽하지 않다. 없어져야 하는 고장 난 세포가 가끔 살아남을 수 있고, 이렇게 살아남은 고장 난 세포는 가끔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고장 난 세포는 더 이상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면 안 된다는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제 이 세포들은 제멋대로 분열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면서 곳곳에 세포 덩어리를 쌓기도 한다. 암세포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서로 치밀하게 연결돼 유지되던 몸이라는 시스템도 차츰 무너진다. 그러니 암세포를 제거해서 더 이상 우리 몸을 망가뜨릴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 면역세포를 개조해 암세포를 제거하려는 치료법은 그런 기법 중 하나이다.

우리 몸에서 일하고 있는 면역세포 중 일부는 고장 난 세포를 제거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 면역세포가 놓칠 때도 있긴 하지만, 평소에는 정확하게 고장 난 세포를 제거한다. 이 때문에 몸이라는 시스템이 유지돼 우리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부터 세포를 제거할 수 있는 이 면역세포에 암세포 검거용 추적기를 추가로 장착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 지문으로 개개인을 식별하는 것처럼, 암세포에만 있는 지문 같은 표적을 이용해 암세포를 잡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면역세포가 더 효과적으로 암세포를 찾아내고 제거할 수 있도록 한다면 다른 약물 없이도 암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카-티(CAR-T) 세포 치료법은 이런 개념을 현실화한 사례이다. 이 치료법은 세포를 죽일 수 있는 티 세포에 키메라 단백질을 장착해 암세포를 제거한다. 이 키메라 단백질은 추적용 손잡이와 신호용 손잡이 두개가 결합된 형태이다. 먼저 추적용 손잡이는 카-티 세포가 암세포에만 들러붙게 한다. 세포 표면에는 다양한 생체 분자가 우둘투둘 돋아나 있는데, 추적용 손잡이는 세포들을 하나하나 뒤지면서 암세포에만 있는 분자를 꽉 붙든다. 이렇게 붙들고 나면 암세포와 카-티 세포가 들러붙어 두 세포가 아주 가까워진다. 이제 공격 신호만 주면 된다. 신호용 손잡이가 그 역할을 맡아 “이 세포를 죽여라”라는 신호를 카-티 세포 안쪽으로 보낸다.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다.

여느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카-티 세포 치료법도 아직 한계는 많다. 아직까지 추적용 손잡이로 붙잡을 수 있는 암 종류는 제한적이다. 또 추적용 손잡이에 붙들릴 수 있는 생체 분자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않는 암세포가 생겨날 수도 있으며, 드물지만 추적용 손잡이가 정상세포까지 붙잡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게다가 암세포가 흩어져 있는 혈액암에서는 큰 효과를 보이지만 똘똘 뭉쳐져 있으면 효과가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한계점들은 이미 하나둘 극복되고 있어 전망은 밝다.

그러나 당장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건 역시나 수억원에 달하는 치료비다. 다른 사람의 티 세포는 내 몸에 들어왔을 때 정상세포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환자 본인의 티 세포를 써야만 암세포만 공격하는 카-티 세포 제작이 가능했고, 그래서 더욱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다. 이 문제도 활발히 연구돼 크게 개선됐지만, 치료비가 크게 저렴해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하다. 이처럼 새로운 치료법 개발과 도입은 의생명과학 분야를 넘어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우리 사회는 이런 치료비를 언제부터, 얼마나 분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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