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병곤|제천간디학교 교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격렬하게. 마감(dead-line) 몇개가 겹쳐 있는 이번주. ‘죽음’의 ‘선’이 일상을 짓누른다. 나는 왜 무엇인가 안 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했던가. 일 목록을 만든 다음 버려야 할 것들에 하나씩 줄 그어보려 했다. 한개도 못 지웠다. 욕심, 평판, 체면, 알량한 의무감이 뒤범벅되어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이런 새가슴이라니.
허먼 멜빌의 중편소설 <필경사 바틀비>가 떠오른다. 변호사 사무실 서기로 일했던 바틀비는 어느 날부터 고용주가 시키는 업무 지시에 대해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응답을 반복한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거부의 내용보다 바틀비의 행동 패턴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그가 보여주는 ‘일관된 거부’ 의지 표명이 기괴하고 병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연민과 안타까움도 생겨난다. 바틀비가 작품 속에서 이끌어가는 불안과 광기는 고독과 소외를 거쳐 죽음으로 이어진다. 바틀비가 필경사 이전에 가졌던 직업이 우편물 취급소에 쌓인 수취인 불명 편지들을 소각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작은 단서 하나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영국 현대미술가 마이클 랜디는 자신이 소유한 물건 7225개를 3년 동안 준비 과정을 거쳐 고르고, 분류했다. 2001년 2월. 런던 중심가 쇼핑센터 하나를 단기 임대하여 대형 컨베이어와 압착 롤러를 설치한다. 2주간에 걸쳐 여권, 우표, 자동차, 가구, 책 등 목록에 올린 자신의 물건을 하나씩 모두 부숴버린다. 누적 관람객 4만5천명이 이 장면을 지켜봤다. 작품명 <브레이크 다운>. 유튜브에서 17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시청이 가능하다. 인터뷰 도중 랜디는 할머니가 남겨주신 유품이 부서질 때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느꼈다”고 증언한다.
프랑스 그르노블 출신 조형예술가 쥘리앵 프레비외. <입사거부서>로 유명하다. 7년에 걸쳐 구직광고를 낸 회사 1000곳에 편지를 썼다. 온갖 이유를 붙여서 “제발 나를 고용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지원서를 보낸 것이다. “지금 저는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에 ‘회계 및 행정직 공무원’과 같은 한가로운 보직을 겸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저에게 닥칠 행운에 대비하기 위해 지원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완전히 삭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이다. 공무원을 뽑으려는 보크르송 시장에게 보낸 ‘지원서’ 일부다. <입사거부서> 한권을 찬찬히 훑다 보면 우리가 취업에 바빠 면밀히 살펴보지 못했던 채용 공고문들의 결함과 부조리가 드러난다. 이에 대한 프레비외의 반응은 풍자와 조롱, 재치 있는 반전이다. 일부러 과잉된 문학적 수사,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등을 구사한다.
졸업을 한달 앞둔 아이들이 얼마 전 학교 밖에서 진행한 인문학 캠프를 마쳤다. 낯선 분야를 공부하고, 발표문 준비하느라 버거웠던 모양이다. 2~3년 전부터 ‘공부 근력’을 더 갖추도록 교육과정을 손봐야 하지 않겠냐는 교사들의 견해도 있다. 이런 사고는 순환논법에 빠지기 쉽다. 만약 그 전에 높은 수준의 공부를 해놓은 고3 아이들이라면 한 단계 더 진전된 인문학 캠프 발표문을 기대하거나 요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시점에서 역량 부족을 느낀 아이들의 자기 평가는, 역설적이지만, 그 이전에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으므로 생성된 것이다.
안 할 수 있겠다는 의지는 그 자체로 커다란 힘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주들은 게으르다. 그것은 타인들의 근면이 있기에 가능하다. 안락하게 게으름 피우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으로 인해 모든 사람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신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하려는 동기와 안 해도 불안하지 않은 뚝심은 공존 가능하다. 우리 교육계는 ‘역량’이라는 용어에 십수년간 휘둘려왔다. 결국 ‘넌 뭘 할 수 있니?’ 묻고 있는 프레임에 갇혀 허둥대고 만 꼴이다. 특정 시스템이 내게 ‘상품 가치 높이라’고 하는 요구에 대해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고 저항할 힘이 우리 교육에 남아 있으면 좋겠다. 자본주의가 싫어하는 최대의 적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안 하려는 사람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안 하고 싶다는 말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나는 몇시간째 이런저런 자료를 들춰봤다. 결국 뭔가 한 것이다. 새가슴 소유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