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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수능 시즌의 라떼생각

등록 2021-11-21 18:36수정 2021-11-22 02:34

[세상읽기] 조형근ㅣ사회학자

대입 수능으로 떠들썩한 한주가 지나자 문득 ‘라떼’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이었다. 오후의 쉬는 시간, 남자고등학교에 긴 생머리의 젊은 여성이 나타났다. 건물 앞을 지나는데 층마다, 창마다 새까만 머리들을 내밀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세상에, 다니던 성당의 친구였다. 손을 흔들고 뛰어 내려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의 나른하던 남자고등학교가 깨어나 우리를 에워싸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한동안 모르는 애들이 아는 체를 했다.

그녀는 여상 야간부를 다니며 낮에는 남자고등학교에서 급사로 일했다. 그날은 근처 교육청과 우리 학교에 서류를 전하러 왔단다. 그 후로는 교육청에 올 때면 가끔 미리 연락해서 자습 빼먹고 같이 놀았다. 고3 올라가기 전 봄방학 때는 집에 독서실 간다고 말하고, 친구가 일하던 고등학교의 구석진 빈 교실에서 며칠 같이 공부하기도 했다. 공부는 무슨, 이야기꽃만 피웠다. 손은 못 잡고.

이듬해가 되자 나는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가고, 그녀는 직장인이 되어 고향에 남았다. 여름방학, 돌아온 고향의 시내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났다. 프랑스에 가서 제빵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열일곱살 때부터 ‘가장’이던 그녀였다. 제빵은 핑계고, 무조건 떠나고 싶다고 했다. 짐 같이 질 테니 함께 가자며 큰소리를 쳤다. 진심이었다, 감당 못 할. 다음 약속 때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성당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로 간 나는 곧 5공화국의 말기 증상들과 서울 사람들에 마음을 뺏겼다. 그녀가 옳았다.

주변에 대학 안 간 이들이 여럿이었다. 아무래도 여성이 많았다. 전두환 정권의 졸업정원제 실시로 대학생이 크게 늘었지만 1989년에도 대학진학률은 33% 남짓, 고교 졸업생 열에 일곱 정도는 여전히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때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살만 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소위 386세대가 기득권이 됐다는 비판이 많다. 맞다. 그리고 일부다. 그들의 기득권 됨에 대해서라면 나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자아)비판해왔다. 하지만 그 세대의 평범한 대다수는 한번도 기득권이 된 적이 없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던 시기에 경제 상황 덕을 보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과 일부 대기업 소속을 제외하면 고용 안정성의 파괴를 온몸으로 감당한 이들이다. 자영업에 내몰려 이미 몇번 망해본 이들도 수두룩하다. 하물며 여성이라면 오죽할까? 386세대가 특권을 누린 탓에 요즘 청년의 처지가 어렵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

지금의 청년세대도 마찬가지다. 처지가 같을 리 없다.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다지만 명문대와 인서울, 지방대 사이에 위계와 차별이 심각하다. 좋은 직장도, 언론의 관심도 서울에만 몰려 있다. ‘지잡대’라는 참혹한 모욕도 공공연하다. 입시 공정성 논란도 마찬가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민심이 들끓던 2019년 말, 대통령은 대입 정시 확대 방침을 밝혔다. 뒤이어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라 2023년에 정시로 추가 입학하는 학생은 전체 수험생의 1.4%다. 정시 대 수시 논쟁이 그들만의 놀음인 이유다.

사회학자 양승훈에 따르면 공채나 국가고시 등 표준 취업경로를 통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구는 전체의 10~15%에 불과하다. 85~90%의 청년은 중견, 중소기업에서 일하거나, 플랫폼노동 같은 비정형 노동, 자영업에 종사하게 된다. 언론과 정책의 언어는 이 절대다수의 노동을 ‘이례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이토록 보편적인 삶을 실패로 모욕한다. 정작 우리 관심이 모여야 할 곳은 여기다.

라떼로 돌아가보자. 사실 그녀와 딱 한번 연락이 됐었다. 약속에 나오지 않은 그날, 몇번의 시도 끝에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아주 많이 젖은 목소리였다. ○○이는 없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다그치는데 자기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더 이상 성당에 나오지 않았다. 가난보다 더 모욕적인 사실이 있다. 평등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부디 그녀가 ‘없는 존재’로 살지 않았기를. 몇십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대학입시로 난리다. 대다수의 삶에 대한 무시와 모욕은 더 심해졌다. 사실은 아직도 조금 아프다. 라떼 생각이 추억만은 아닌 탓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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