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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후보들에게 기후를 묻는다

등록 2021-11-22 18:23수정 2021-11-22 19:02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고 있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6일(현지시간) 기후 활동가들이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이제는 행동에 나서달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10만 명이 넘게 모여 COP26 기간 열린 시위 중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 글래스고 AP/연합뉴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고 있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6일(현지시간) 기후 활동가들이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이제는 행동에 나서달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10만 명이 넘게 모여 COP26 기간 열린 시위 중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 글래스고 AP/연합뉴스

[숨&결] 강병철ㅣ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달 치 비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

밤새 빗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침 뉴스를 켜자마자 캐나다 서부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는 소식이 귀를 때렸다. 크고 작은 도시 다섯곳이 물에 잠겨 2만명이 대피했다. 군 헬기가 고립된 사람들을 구조하는 와중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쓰러지면서 산이 무너졌다. 도로와 철도와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나오고, 가축 수천마리가 물에 빠져 죽었다. 대형 바지선이 표류하고 캐나다 최대의 항구인 밴쿠버항이 부분 마비되자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던 공급망이 타격을 받았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18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참이었다. 사람들은 슈퍼마켓으로 뛰었다. 사재기로 식료품이 동났다. 주 총리는 “500년 만의 재난”이라며 질서를 호소했다.

2008년 건강상 문제로 요양차 밴쿠버를 찾았다. 여름에도 시원했다.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모기도 없고, 매미도 없었다.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고, 숲은 깊고 울창했다. 동네에는 꽃이 만발하고, 눈을 돌리면 한여름에도 빙하를 머리에 이고 선 산꼭대기들이 시원했다. 겨울이면 매일 이슬비가 내려 뿌리를 촉촉히 적신 덕에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자라고, 여름에는 그 나무들이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 계곡마다 맑은 물이 콸콸 쏟아졌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눌러살기로 했다.

지금은 어떤가? 에어컨 없이는 여름을 나기 어렵다. 해마다 가뭄으로 엄청난 산불이 나 사방이 연기로 부옇고, 해와 달이 벌겋다. 꽃과 잔디는 마르고, 빙하는 6월이면 모두 녹는다. 겨울에는 열대처럼 폭우가 쏟아진다. 여름내 바짝 말라 약해져 있는데다 비바람이 몰아치니 집채만한 나무들이 속절없이 쓰러진다.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북미 서해안이 이 지경이다. 이제 천국은 없다.

지난 2년간 밴쿠버는 비상사태를 세번 선포했다. 코로나 대유행, 올여름 49.6도에 이르는 폭염, 올겨울의 물난리다. 공통점이 있다. 모두 환경 위기다. 폭염과 폭우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 역시 인간의 자연 파괴로 인해 야생동물과 접촉이 늘어나 생긴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이것이 밴쿠버만의 일일까? 우리도, 아니 전세계가 점점 더운 여름, 점점 추운 겨울, 점점 많은 기상이변을 겪는다. 미세먼지와 폭우와 폭설과 돌풍과 우박과 가뭄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이 ‘뉴 노멀’이 되었다.

세계 모두가 겪는 일이니 모두가 공동 대응해야 한다.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자고 며칠 전에 글래스고에서 200개국 대표가 머리를 맞댔다. 뭔가 합의를 이루었다고 애써 의의를 부여하지만 들여다보면 맹탕이다. 산업화와 식민지 경영을 통해 성장의 과실을 독점한 부자 나라들은 빈국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도록 매년 1천억달러를 지원한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그냥 죽으란 소리다. 부스터샷을 맞으면서도 코로나 백신은 나누지 않겠다는 심보와 같다. 자기들이 지구를 하나로 묶어놓고 자기들도 죽을 줄은 모른다.

대선이 코앞이다. 모두가 부동산 문제와 후보들을 둘러싼 온갖 추문에 정신이 팔린 동안에도 온실가스 농도는 계속 치솟는다. 차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차차 쓰레기를 줄이고, 차차 소비를 줄이면 된단다. 미안하지만 늦었다. 당장 배출량을 0으로 줄여도 향후 수십년간 온실가스 농도는 계속 상승한다. 그러니 차차 줄이겠다는 한가한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당장 내년에 홍수로 한강이 넘치고, 무시무시한 태풍이 제주도를 휩쓸고, 폭염으로 저소득층 노인과 새파란 노동자들이 쓰러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들어보자. 김구 선생은 우리가 가장 가난하고 비참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 “타인에게도 행복을 전해주기”를 꿈꾸었다.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에 든다. 그런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용렬한 약속을 들으며 그저 재난 속에서 죽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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